내가 원래 쓰려던 글은 평화_통일 사이에 놓인 작은 점에 관한 것이었다. 그 작은 점이 의미하는 엄청나게 길고 험한 간극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반짝이던 촛불 광장의 화장실과 박원순 시장'으로 주제가 옮겨간 이유는 슬퍼서이다. 지금 이 순간만은 인생이 허망하다. 내가 믿어왔던 가치들조차 의미없고 낡고 바래 보인다.

글을 쓰려는데 온몸에 힘이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느끼는 슬픔과 떠오르는 추억에 대해 꾸밈없이 쓰기로 한다. 지금 조문을 하고 싶지 않거나 5일장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지만 그건 상관없다. 내 슬픔은 온전히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독자들은 내가 박원순 시장과 꽤나 알고 지냈던 친한 관계가 아니었나 오해할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박원순 시장과 나의 인연은 4년 전에 서울시 시장실에서 만나 1시간 반 동안 탈북민에 관한 정책회의를 한 게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애끓는 슬픔은 아니지만 길고 끊기지 않는 잔잔한 슬픔을 느낀다. 거대한 슬픔 공동체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고 느낀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존재하는 일상적 환경을 구성하는 데 박원순 시장이 지대한 역할을 해왔음을. 그가 가버리고 난 이후에야 내가 그간 박원순 시장과 연결되어 있었구나를 깨닫는다.

2017년과 2018년 겨울 인천 소래포구에서 2시간 반이 걸리는 광화문 광장까지 매주 나갔다. 낮에 나가 늦은 밤까지 거대한 촛불군중의 무리 속에서 질서를 지키면서 광장을 걸어다니다 보면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급할 때가 많았다. 광화문 모든 빌딩들은 촛불시민들에게 언제든지 화장실을 열어 주었다.

그 작은 공간이 나에게 주었던 안도감을 감사함으로 추억한다. 광화문 빌딩들의 화장실을 열게 하기 위해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이 했던 노력을 기억한다. 한 번도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는데 그가 가버렸다.

내가 기억하는 박원순 시장은 이명박 대통령처럼 온국민을 홀리는, 그런 어젠더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지닌 진정한 힘은 일상처럼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삶에 스며들고 바꾸고 편안하게 해주는 데에서 나온다. 묵묵한 화장실처럼. 지역정치란 그런 것이다. 나는 죽음을 선택한 한 사람의 고통스러움과 아픔에 대해 생각하고 슬퍼한다. 나는 그를 시민들을 사랑하고 시민의 일상생활을 바꾸어낸 가장 뛰어난 정치인으로 기억하고 애도한다. 안녕! 박원순 시장님, 잘 가시길. 정말 고마웠습니다.

 

김화순 북한노동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