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시대다. 인류의 지적 수준이 발달해 똑똑한 사피엔스가 됐다. 거기에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의 힘으로 인류의 문명은 새로운 차원에 진입했다. 최첨단 시설을 구비한 스마트시티도 속속 등장하고 손안에는 만물박사 스파트폰이 쥐어졌다.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되고 체크될 수 있다. 인드라망처럼 조직된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해 시스템을 창안하거나 활용하는 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확인할 수 있다. 섬뜩한 세계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4차 산업혁명시대다. 특수안경만 착용하면 원하는 모든 정보를 스캔하듯이 파악할 수 있는 QR코드 시대가 된 것이다. 첨단시스템을 통해 원하는 목표물은 얼마든지 파악하고 추적할 수 있으며 3D 프린팅을 이용해 원하는 제품을 개인마다 제조할 수 있다. 심지어 부품을 갈아 끼우듯 인간의 장기도 만들어 교체할 수 있으며 상대방의 생각을 캐치하는 것은 물론 조정도 가능하다고 하니 공포감을 느낄 정도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대적 조류에 편승한다. 그러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이유에서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본 내용들이 현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터미네이터'를 꼽을 수 있다. 인간이 만든 기계 로봇에 자아가 투입되면서 인간을 능가하게 된다는 가상현실은 인간과 기계 로봇과의 전쟁을 야기하고 인간이 기계 로봇의 노예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속도를 보면 이제 더이상 가상세계만은 아닌 것이다.

과학의 발달이 과연 긍정의 힘만 있는 것일까 성찰이 필요하다. 바벨탑을 쌓듯이 향상일로 전진하는 문명의 발달이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걱정스럽다. 낭만과 감상주의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중장년층들은 쫒아가기 어려운 낯선 현실로 달려가고 있다. '꼰대'라는 비난과 함께 시대적 낙오자로 치부하는 신세대들의 저돌적인 자세도 서럽다.

결국 적응하고 따라가는 자와 적응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자로 나뉘어 계층마다 딴 세상 사람처럼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염려된다. 그것을 세대차라고 한다면 기성세대는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는 인류가 함께 노력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가 되었다. 빨리빨리 국민성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들은 초스피드한 문명의 발달에 별 거부감없이 ICT(정보통신기술) 시스템을 앞다투어 추종해 간다. 빨리 따라오고 적응하는 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인류발전의 템포를 절충하며 조화롭게 진화되어가야 하지 않을까? 문명에 앞선 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진정한 지구촌 공생과 인류애를 함께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종교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외면당하고 있는 종교적 마인드를 회복하는 것은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종교가 지구상에 존재하고 종교적 갈등도 도처에 발생하고 있기는 하지만 종교의 세계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인류의 구원이요 인류의 행복이다. 낮은 자세와 겸허한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어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것을 목표로 한다. 무엇이 인류의 재앙을 막고 인류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일까.

'느림의 미학' 새삼 하늘의 섭리를 따르고 순응하며 여여하게 살아가던 순진한 인류의 과거를 생각하게 된다.

 

최영희 시인·송도소식지 주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