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시절 얘기지만 아파트경비원이 주민들에게 '갑' 비슷하게 비춰졌을 때가 있었다. 주차를 잘못 하거나 경비실에 맡겨진 등기우편을 제때 찾아가지 않으면 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다른 동네 아파트 입구에 있는 공중전화를 이용하기 위해 차를 전화기 옆 도로변에 세웠다가, 손으로 '경비' 라고 쓰인 완장을 가리키며 “이게 보이지 않느냐”고 호통을 치는 경비원을 접한 유쾌하지 않은 기억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경비원이 대개 60대 이상으로 바뀌고 경비 취직이 어렵게 된 뒤 이제는 경비원에 대한 주민들의 갑질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세상 참 야릇하다. 지난 5월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 최모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최씨는 사소한 이유로 한 입주민으로부터 지속적인 폭행과 괴롭힘을 당해왔다. 폭행으로 코뼈가 부러질 정도였다. 최씨는 유서에 “저 억울해요. 제 결백 밝힐게요”라는 말과 함께 주민들을 향해 “그동안 도와주셔서 고마웠습니다”라고 썼다.

지난달에는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경비원 두 명이 동대표 딸의 이삿짐을 나르는 장면이 방송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경비원은 “이건 무슨 머슴이라니까요. 그래도 내가 경비라는 자존심이 있잖아요. 경비복 벗고 이삿짐 날랐어요”라고 말했다. 경비원에 대한 갑질이 얼마나 많고 다양한지 '애환서린 아파트경비원의 일기'라는 책까지 나왔다.

경기도 부천에서는 여성 관리소장이 자살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업무수첩에 '여성 소장이라고 비하하고 비아냥거리고', '공갈협박' 등의 내용이 있어 아파트주민 갑질이 사망 원인으로 의심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아파트경비원은 경비업무 외에도 택배관리, 분리수거·청소, 주차관리 등 부가적인 업무를 과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경비원을 감축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는 아파트경비원의 최소한 인권과 복지를 법으로 보장하는 '경비원 인권지원 조례' 제정을 추진 중이다. 전국적으로 첫 사례라고 한다. 서울 아파트경비원 자살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재준 시장은 “대부분 은퇴자나 취약계층으로 다른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경비원들에게 주민은 곧 생사여탈권을 쥔 이들이다”며 “계약관계를 이용한 갑질은 법적 보호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환서린 아파트경비원의 일기' 필자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파트경비원들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이요, 한 가정의 아버지다. 서로를 배려해 삭막한 풍토를 바꿔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썼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