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가파른 산길, 다닥다닥 붙은 좁은 집
공동화장실 썼지만 오순도순 정겨웠던 그 시절

60~70년 송림산 재현 골목마다 체험 '향수 자극'
초등학생 온라인 교육 ·지역사 기획전시도 눈길
▲ 전시실 상가구역 입구.
▲ 전시실 상가구역 입구./사진제공=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은 일본인에게 상권을 박탈당하고 중국인에게는 일자리를 잃고 인천 동구 송현동, 송림동과 같은 신설 마을로 찾아들었다. 비탈진 소나무 숲은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줬다. 6·25로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도 이곳으로 대거 몰려들었으며, 1960~70년대에는 산업화와 함께 전라, 충청지역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였다. 산꼭대기까지 점차 작은 집들이 들어차면서 마침내 18만1500㎡ 규모의 수도국산 비탈에 3000여 가구가 모둠 살이를 한다. 이렇게 송림산 일대를 일컫는 수도국산은 인천의 전형적인 달동네가 됐다. 지금은 사라지고 만 달동네의 자취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있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1960~70년대 달동네 서민의 생활상을 테마로 한 체험중심의 전문박물관으로 2005년 10월25일 문을 열었다.

 

 

#전무후무 달동네를 기록

달동네박물관 입구에서 70년대 동인천 거리에서 봤던 미담다방, 우리사진관 등을 만날 수 있다. 수도국산의 4계절을 알아볼 수 있는 생활사 유물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상설전시실은 1971년 11월 어느 날, 인천의 수도국산을 재현한 곳이다. 20분에 한 번씩 낮에서 밤으로 변화하면서 시간체험이 가능하다.

지하 전시실 내에는 곳곳에 체험코너로 물지게 체험, 옛날 교복 입어보기 등이 마련되어 있어 전시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의 잊혀가는 옛 생활습관을 직접 체험해 보는 재미가 있다.

달동네에서 실존했던 인물 모형이 마치 살아있는 듯 관람객을 반기기도 한다. 박물관엔 옛 향수를 자극하는 생활용품들로 가득하다. 달동네 입구로 들어서면 구멍가게, 이발소, 솜틀집 같은 작은 가게가 재현되어 있고, 가파른 위치상 집집마다 설치될 수 없었던 수도나 변소가 공동으로 설치된 여럿이 생활하는 공동생활구역을 찾을 수 있다. 부업을 하거나 작은 방에서 식사를 하는 등 달동네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가옥들도 인상적이다.

▲ 공동 수도 재현.
▲ 공동 수도 재현./사진제공=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놀이체험관

달동네놀이체험관은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전시실로 2015년 11월25일 새롭게 개관했다. 어린이들이 쉽게 수도국산의 역사를 알아보고 1970년대의 놀이를 하도록 다채롭게 꾸며졌다. 주요 체험물로는 선생님과 함께 연탄만들기, 달고나만들기, 영상으로 만나는 뻥튀기 아저씨, 수레목마타기, 모래놀이 등이 있다. 불빛이 반짝이는 달동네의 모습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한 장 남길 수 있다. 특히 수도국산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영상으로 재미있게 풀어 만든 거꾸로 가는 시간표 코너를 자세히 보면 된다.

▲ 1960년대 말 수도국산 달동네(이광환).
▲ 1960년대 말 수도국산 달동네(이광환)./사진제공=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근현대사 이해하는 교육의 장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매년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상반기 체험교육은 잠정 중단됐지만 대신 8월까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박물관 온라인 체험교육이 한창이다.

온라인 체험교육은 교육을 신청한 아이들이 체험 키트를 우편으로 받고 동영상을 보면서 창의 교육에 참여할 수 있게 진행된다. 총 3개 강좌 170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홈페이지를 통해 박물관의 자세한 일정을 알아볼 수 있다.

 

▲ 송현상회 전경.
▲ 송현상회 전경./사진제공=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다채로운 기획전시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매년 지역사와 관계된 기획전시를 준비한다.

2020년엔 '배다리에서 쇠뿔고개까지 금곡동·창영동'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크게 두 가지 주제로 이루어져 1부 '교통의 중심지, 마을이 되다'에서는 <인천항안>(규장각 소장 복제본)을 비롯, 1890년대 쇠뿔고개의 풍경 사진 등을 전시했다. 2부에서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변화된 배다리시장의 모습을 신문기사와 구술 자료로 표현했다. 전시는 오는 12월말까지 지속된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2017년부터 매년 하나의 동을 선정해 옛날 고문서와 신문, 사진 자료를 수집하고 기초 조사를 진행한 후 직접 동네를 찾아 주민들의 심층 조사를 통해 마을의 이야기도 수집하고 있다. 2017년 송림동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송현동을 조사했으며 지난해에는 금곡동과 창영동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달이 잘 보이는 동네

'달동네'라는 용어는 '달나라 천막촌'에서 비롯됐다. 1950년대 말~1960년대 중반 사이에 도심에서 쫓겨난 판자촌 주민들은 정부가 정한 높은 산자락에 임시 천막을 치고 살면서 방에 누우면 밤하늘의 달과 별이 보인다고 해서 생겨났다.

달동네라는 말이 널리 쓰인 것은 1980년 TV 일일연속극 '달동네' 방영 이후다. 어려운 처지에서 보듬고 살아가는 달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이 연속극이 큰 인기를 누리면서 이후 '달동네'는 불량노후 주택이 모여 있는 산동네의 대명사가 됐다.

달동네와 같은 '도시 저소득층의 집단 밀집 주거지'의 시초는 일제강점기 '토막민촌'이라고 할 수 있다. 토막민촌은 일제의 수탈을 피해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올라온 이들이 주인 없는 산비탈이나 개천가에 허가받지 않고 지은 것이다.

달동네도 그중 한 형태인데, 일제의 식민정책, 8·15해방, 6·25 그리고 196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인구가 급격하게 집중되고 주택이 부족하게 되자 빈민계층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달동네 주민들은 국가 소유의 땅을 무단 점거하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자주 철거되거나 집단 이주되곤 했다. 하지만 이들은 도시 내에서 일자리를 얻고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도시를 떠날 수 없었다. 따라서 쫓겨나면 다시 도시의 다른 곳에서 무허가 집을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달동네는 산비탈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집들이 자리하면서 이루어졌다. 좁고 비탈진 곳에 집을 짓다 보니 공간의 여유가 없는 반면 많은 기능을 담았다. 더 나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궁리하면서 자기만의 공간을 창조해 냈다. 따라서 전면적인 개축보다 낡고 오래된 부분을 개보수하거나 자투리를 활용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평면은 지형에 따라 ㅡ자, ㄱ자형을 기본으로 하는데, 증축과 개축을 하면서 조금씩 바뀐다. 수도국산 달동네 가옥 형식은 1960년대 후반까지는 목조 흙벽에 초가지붕 혹은 루핑(유지)지붕이 일반적이었지만 1970년대 전반 새마을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지붕은 기와지붕이나 슬레이트지붕으로 변형됐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공동기획 인천일보·인천광역시박물관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