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칠 때 감독자 몰래 미리 준비한 답을 보고 쓰거나 남의 것을 베끼는 부정행위. 외래어 커닝(cunning)의 사전적 의미다. 얼마 전 몇몇 대학에서 '집단 커닝'을 하는 부정행위가 속출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 대학이 1학기 수업과 평가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비대면 시험을 보는 상황을 악용한 사례다. 온라인 기말고사에서 상당수 학생이 '오픈 채팅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답을 공유했다. 대학 측은 전체 수강생을 대상으로 재시험을 치르고, 커닝한 학생들에겐 낙제점을 주겠다고 밝혔다.

커닝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명확하진 않지만, 그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고 전해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커닝은 출세의 한 방편이었다. 실력은 없는데 등용은 하고 싶은 부류의 전유물. 하지만 시험 감독관 눈초리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실패의 쓴맛을 본 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커닝 방법은 다양했다. 어떤 커닝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실례로 조선 숙종 때 사례를 한번 보자. 당시엔 과거에 따른 폐해가 심각했는데, 대나무통으로 바깥과 연결해 시험 문제를 보내면 답을 적어 보냈다고 한다. 요즘 '커닝 페이퍼'를 몸속에 감추고 시험을 보는 일은 '고전' 축에 속한다.

이런 커닝과는 담을 쌓은 학교가 있어 눈길을 끈다. 무감독 시험을 운영하는 제물포고등학교가 주인공이다. 무척 오래됐고, 언론에도 자주 등장해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이젠 그러려니 할 만한데, 요즘 일부 대학교에서 부정행위가 드러나 파문을 일으키면서 본보기로 주목을 받는다. 제물포고는 국내 최초로 개교 3년 차인 1956년 1학기부터 2020년 올해까지 64년째 무감독 시험을 치른다.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는 무감독 고사 선서를 하면서, 학생들은 양심을 지켜왔다. '정신문화' 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전통이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는 우리 사회에서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어느 학교에선 한 학생의 시험 점수가 오르자, 의심을 하면서 감독 교사를 두 배로 증원하고 자리배치를 강화했다고 한다. 서로 믿지 못하는 씁쓸한 교육 세태를 보여준다.

제물포고는 최근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감독 시험 소감문 쓰기'를 실시했다. 학생들은 소감문에서 '선생님이 있을 때보다 더 조용한 분위기에서 시험을 본 것 같다', '시험 시작 전 방송이 울리며 선서내용을 외치는데 소름이 끼쳤다' 등 무감독 시험에 대한 긍정적인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학교는 양심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경쟁으로 치닫는 우리 교육에 결코 쉽지 않지만, 양심은 그만큼 값진 가치를 아우른다. 제물포고 졸업생들은 모교의 무감독 시험 교육 방향에 커다란 자긍심을 갖고 있다. 국가와 사회에 한몫을 하는 인재육성은 양심을 가르치는 교육에서부터 비롯되지 않겠는가.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