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득한 삶의 흔적 새겨져 있는 경기만
갯벌과 소금 만나 생명을 잇는다
경기만의 핵심자원인 갯벌은 생명의 보고다. 갯벌에서 얻어지는 소금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자원으로 생명의 가치를 담고 있다. 역사적, 문화적, 자연환경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경기만을 재발견하기 위해 갯벌과 소금이라는 가치를 담아낸 ‘경기만 소금길’이 만들어졌다. 인천일보는 경기만 연안을 따라 곳곳에 산재한 에코뮤지엄(지붕없는 박물관)을 만나는 ‘경기만 소금길’을 통해 총 20회에 걸쳐 경기만의 역사∙문화∙관광자원 등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①생명의 길, 경기만 소금길
충청남도 태안반도와 지금은 닿을 수 없는 황해도 옹진반도 사이. 해안선 길이 약 528㎞, 너비 약 100㎞에 이르는 반원형의 만을 경기만이라 부른다. 김포, 강화도를 포함해 인천광역시,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 평택시가 가진 해안이 바로 경기만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경기만은 연안을 따라 기름진 갯벌이 발달해 있고, 이곳에서 생명 자원으로서 가치를 담고 있는 값진 소금이 얻어졌다.
역사∙문화적 가치 지닌 경기만
경기만은 한반도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역사적으로 국가 간 힘의 충돌과 각축전이 숱하게 벌어진 곳이다. 한강 하구, 특히 강화도를 장악하면 한반도의 중심인 서울, 개성을 장악할 수 있기에 경기만은 군사적 요충지였다. 경기만에 속해 있는 화성 당성과 화량, 마산포 등은 외국으로 나가는 나들목으로 청나라, 당나라, 일본과의 교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경기만은 북한지역과의 교역, 중국 산동 이북지역과의 교역은 물론 물류교통의 핵심 로터리 역할도 수행했다. 경기만에서 뻗어나가는 해로는 세곡 운반을 담당하던 세운선과 중국으로 물자를 수송하고 사신을 보내는 대양 항로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경기만은 국내 최대의 해양 수출기지이자 물류허브로 그 중요성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는 “한반도는 모든 지역과 국가를 전체적으로 해양 네트워크로 연결할 수 있는 동아시아 지중해 중심에 위치한다”며 “경기만은 동아시아 지중해에서 가장 의미 있는 역학관계의 코어(core)이자 허브(hub)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만 내에는 크고 작은 200여개의 섬이 존재하면서 역사문화적인 가치와 더불어 수많은 해양생태 자원이 분포해있다. 연안을 따라 발달된 갯벌과 수자원을 비롯한 생태계의 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이다. 선사시대부터 시작된 경기만에서의 생산활동은 어업과 농업을 넘어 현재의 첨단산업에 이르렀다. 경기만은 중세와 근대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전진기지로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
경기만의 보물 갯벌과 천일염
이처럼 역사적, 문화적, 자연환경적 가치를 지닌 경기만이 위치한 서해안은 세계 5대 갯벌지대로 손꼽힌다. 어느 곳보다 심한 조수간만의 차가 만들어낸 갯벌은 경기만의 보물이다. 경기도와 인천광역시의 갯벌 면적은 전국 갯벌 면적의 약 35%를 차지하고 있다.
서해안에 갯벌이 발달하면서 경기만에도 자연스레 염전이 만들어졌다. 천일염 제조법이 구한 말 일본인에 의해 건너와 경기만에는 천일염 소금단지가 만들어졌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염전으로 끌어들여 바람과 햇빛으로 수분만 증발시켜 만든 소금이다. 구한 말 천일염이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 바로 경기만의 인천 주안이다. 매국노 이완용도 드나들었던 것으로 알려진 주안염전을 비롯 한국전쟁 이후 월남한 평안도 사람들이 모여든 시흥염전, 그 외 화성염전, 인천 포동염전, 대부도 동주염전, 영종도∙백령도∙영흥도 염전 등 대규모 염전이 경기만에서 발달했다.
그러나 경기만의 갯벌은 산업화에 밀려 점차 모습을 잃어갔고, 경기만 소금의 가치 또한 잊혀졌다. 경기만 연안은 다양한 생물의 산란, 서식지이며 풍부한 수산자원이 분포하는 곳이지만 수도권 집중 개발의 포화로 연안자원 감소와 환경 훼손이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경기만포럼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2000~2010년 사이 전국 연안의 갯벌면적 중 62.5%가 경기∙인천연안에서 감소했다. 2004~2013년 기준 경기∙인천지역의 매립지 준공 면적은 11.2%로 광역지자체 중 가장 높다.
개발 압력에 사라져 간 염전 갯벌
국가주도의 급속한 산업화로 경기만 갯벌이 대규모 매립되면서 염전 또한 사라져갔다. 염전은 평지이고 넓기 때문에 토목공사비가 크지 않다. 또, 대부분이 공유수면이라 공단, 비행장, 아파트가 쉽게 들어설 수 있다. 더구나 경기만은 평균 수심이 5~10m로 얕아서 간척에 유리하다. 새만금 지역보다 간척 공사비가 덜 드는데다 서울과 가까운 입지 탓에 지가(地價)가 높다 보니 경기만은 거센 개발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인천 주안염전은 산업단지와 아파트촌으로 변했고, 영종도 염전은 비행장으로 바뀌었다. 경기만의 염전 중 그나마 소래염전 정도가 폐전된 이후 소래해양생태공원, 시흥갯골생태공원 등으로 바뀌어 예전 경기만 소금의 기억을 보존할 뿐이다.
소금에 관한 문화와 역사를 고증한 ‘소금아 길을 묻는다’의 저자 배성동 씨는 저서를 발간하면서 “한때 지역을 먹여 살린 상전이었던 소금이 지금은 쓰레기보다 값싼 취급을 받는다”며 “전국 대부분의 염전이 공단이나 아파트 단지에 묻혔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염전 사진작가 경민기 씨도 “전국적으로 염전 갯벌이 사라지고 있다”며 “우리 후손들은 개발에 밀려 없애버린 갯벌을 언젠가 다시 만들기 위해 투자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경기만의 생명 잇는 소금길
갯벌의 파괴, 염전의 폐전 등을 통해 경기만 지역주민들은 떠밀려났다. 이제는 난개발과 파괴의 역사를 간직한 경기만을 생명과 평화, 순환과 재생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역동적인 삶의 현장으로 다시 되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기만을 파괴와 전쟁의 바다가 아닌 생명과 평화의 바다로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때다.
경기문화재단 황순주 지역문화팀장은 “지난 2016년부터 경기문화재단은 무궁무진한 역사적, 문화적, 자연환경적 가치를 지닌 경기만에 대한 기억의 보존과 치유 작업을 해왔다”며 “경기만의 생태와 문화, 역사 등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 경기만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여러 에코뮤지엄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고 말했다.
경기만의 가치 재발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경기문화재단은 ‘경기만 소금길’을 만들었다. 경기만의 핵심자원인 생명의 보고 ‘갯벌’과 이 곳에서 생산된 소금을 테마로 엮었다. 염전이라는 공간을 ‘지역자원의 네트워킹’ 관점에서 경기만 일대에 산재한 역사문화자원들과 연결했다. 갯벌과 소금처럼 진득한 삶의 흔적이 새겨져 있는 ‘경기만 소금길’에서 다양한 에코뮤지엄(지붕없는 박물관)을 통해 근현대사의 아픔과 항토문화의 흔적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김갑곤 (사)연안보전네트워크 사무처장은 “앞으로 최고의 에코뮤지엄 공간이 될 경기만은 역사든 문화든 생태든 가치 재발견을 위해 복원해야 할 것 천지”라며 “시흥갯골생태공원 안의 소금창고처럼 생명의 소금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해 복원할 수 있는 역사문화 컨텐츠가 경기만 연안에는 매우 많다”고 말했다.
/박현정∙박혜림 기자 zoey0501@incheonilbo.com
▲영상제공=로드프레스(http://www.roadpress.net/)
흔해져 잊고 살았지만, 몇백년 전만해도 우리는 '소금'을 얻기위해 목숨을 걸었다
ABOUT-바다의 하얀 황금, 소금
생명 유지 보존을 위해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소금이다. 태아가 자라는 양수에도, 사람의 혈액과 세포에도 염분농도 0.9%의 소금이 들어있다. 소금 없이는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다. 음식물의 맛을 낼 때도 없어서는 안될 것이 소금이다. 조선시대 소금장수가 성행했던 것도 그 시절 먹거리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소금 공급원으로서 소금장수를 많이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과거 티베트 고원지대나 사막지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머나먼 실크로드와 차마고도를 횡단하면서 비단과 소금으로 물물교환을 했다.
로마제국은 기원전 640년 경 세계 최초의 무역로인 소금길 살라리아 가도를 통해 지중해에서 생산된 소금을 내륙으로 운반했다. 중세 신대륙이 발견되기 전까지 유럽의 무역은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소금 패권에 좌우될 정도였다.
히말라야 고산지대 유목민들은 100마리 정도 되는 야크떼를 몰고 130여㎞ 떨어진 생명의 샘 소금호수까지 이동해 목숨을 걸고 소금을 채취했다. 인류는 이토록 소금을 얻기 위해 온힘을 기울여왔다.
인천일보·경기문화재단 공동기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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