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 없는 군인’ 대북첩보, 유격부대

- 전쟁 당시 게릴라전, 요원납치 임무

- 국방부 재편 후에도 대북첩보 활동

 

K.L.O 8240부대의 모태는 ‘백의사(白衣社’다. 백의사는 해방 직후 1945년 11월에 조직된 월남인결사대다. 1945년 9월 한반도에 38선이 그어지고 남과 북이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로 각을 세웠다. 남북 국내 정치 역시 대립했다.

주한미군은 여러 채널을 가동해 대북정보를 수집했다. 백의사가 그중 한 통로였다. 백의사 조직은 평안도 출신의 극우청년이 주도했다. 백의사는 중국 국민당 장제스 정부의 반공특무 지하공작 단체인 남의사(藍衣社)를 본떴다. 대신 한민족을 상징하는 흰옷의 의미로 백의사라 이름 지었다.

김구의 암살범 안두희가 백의사의 비밀암살단원이자 미국 방첩부대(CIC) 요원이라는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 2001년 9월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굴하고, 2002년 1월 공개된 실리(Cilly)보고서였다. 에서 김구 암살범 안두희가 이자 백의사의 비밀암살단원이었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백의사는 K.L.O 8240부대로 바뀌었다. 연합군 직할 첩보공작부대로 변신한 것이다. 임무는 대북첩보공작과 유격작전 수행이었다. 이 과정에서 5000명에서 1만여 명의 대원들이 전선에서 산화했다고 전해진다.

부대 특성상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있는 비운의 부대다. 서해안 동키부대 17개와 강화도 울백 8개 부대, 동해안 주문진 커크랜드 기지 부대 등이 있었다. 군번은 물론 군적도 없는 경우가 허다 해 ‘얼굴 없는 부대’로 불렀다. 적진에 침투해 정보를 수집하고 요인을 납치를 하는 비밀공작이어서 자료를 남길 수 없었다.

 

 

켈로 부대의 공로는 인천상륙작전에 있다. 부대원들은 어민으로 가장해 북한군의 기뢰를 찾아냈다. 연합군 군함이 인천만에 무사히 진입할 수 있도록 항로 수심을 측정하는 임무를 맡았다.

켈로부대는 1953년 8월 대한민국 국방부 제8250부대로 재편됐다. 1953년 초 그들의 규모는 2만 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박정환 기자 hi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