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신' 돈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들
▲ 영화 '돈' 중 비극의 발단이 된 위조지폐.

“돈?… 아니, 신들이여!… 이만큼만 있으면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나쁜 것을 좋게, 늙은 것을 젊게, 비천한 것을 고귀하게 만든다네…”

마르크스는 돈을 '눈에 보이는 신'으로 표현한 셰익스피어의 희곡 <아테네의 티몬>에 나오는 구절을 읽으며 돈의 종교적 전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신실함을 비신실함으로, 사랑을 미움으로, 덕을 패덕으로, 패덕을 덕으로, 종을 주인으로, 주인을 종으로 뒤바꾸는 돈의 변환성이 지닌 무한한 위력을 간파했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은 톨스토이의 <위조지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의 마지막 작품 '돈(1983)'을 통해 '이 시대의 신(神)'으로 숭앙되며 인간의 영혼마저 잠식해버린 돈의 악마적 힘을 스크린 위에 형상화시켰다. 영화는 위조지폐 한장에 의해 평범한 가장이 명예와 일자리를 잃고 결국 아이와 아내마저 잃으면서 연쇄살인마로 전락해가는 과정을 '자동인형' 같은 인물들, 정제되고 가공된 이미지와 사운드, 짧고 간결한 편집 등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래프' 형식으로 차갑고 예리하게 그려내었다.


'흐름의 미학'으로 그려낸 선과 악의 위력

ATM기기 열리는 소리에 이어 돈과 돈을 뽑는 손의 클로즈업 이미지들이 순간순간 스쳐 지나간다. 오프닝을 연 이 짧은 이미지들 속에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의 미학'이 응축되어 있다. 감독은 이미지와 사운드를 두 축으로 하는 선과 악의 상승과 하강 곡선을 '흐름의 미학'으로 그려내었다. 그리고 도시와 시골, 돈과 물, 차량소리와 물소리 등 이미지와 사운드의 대비를 통해 물질과 정신의 세계를 표현해내었다. ATM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스쳐 지나가는 차가운 빛의 흐름처럼, '보이는 신' 돈이 창조해낸 악의 흐름이 인물들의 손, 다리 클로즈업을 통해 형상화한다. 예를 들면 주유소 배달원 이본의 손은 위조지폐를 받는 순간 노동의 손에서 폭력과 범죄의 손으로 돌변하고 결국 도끼를 휘두르는 끔찍한 연쇄살인마의 손으로 전락한다. 바삐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의 흐름, 차량들의 흐름, 도시 소음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과의 감정과 시선의 흐름이 차단된 채 이본 내면에는 점차 악의 힘이 축적되어 간다. 위조지폐 한장이 일으킨 '나비효과'로 인해 삶과 영혼이 송두리째 파괴된 이본이 급기야 살인자로 변했을 때 고요히 흐르는 강물 같은 과부 여인의 시선이 서서히 그에게 다가온다. 이본이 나무 열매를 손안에 한 움큼 따서 빨래를 너는 여인에게 건네는 순간 그녀의 시선은 가만히 그에게 머문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이 장면에 바로 이어지는 끔찍한 살해 장면은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린다. 이본은 도끼를 쳐들고서 “돈은 어디 있어?”라고 여인을 위협한다. 이본은 여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악의 상승 곡선은 절정에 다다른다. 그런데 이 순간 고요히 흐르는 물소리가 이본의 가슴에 서서히 스며든다.

프랑스 영화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십대 시절 이 영화를 본 후 예술로서의 영화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확신을 갖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그를 비롯하여 타르코프스키, 마틴 스코세이지, 다르덴 형제 등 동시대 및 후대 감독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브레송 감독은 관객들에게도 영원히 간직될 아름다운 선물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그것은 바로 여인에게 건넨 이본의 손에 놓인 파릇파릇한 열매이다.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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