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말을 걸겠지 언제쯤일까 언제쯤일까~/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붙여 오겠지/시간은 자꾸 가는데 집에는 다 와가는데/왜 이렇게 망설일까 나는 기다리는데/뒤돌아 보고 싶지만 손짓도 하고 싶지만/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려 봐야지/한번쯤 돌아보겠지 언제쯤일까 언제쯤일까~/겁먹은 얼굴로 뒤를 돌아 보겠지/시간은 자꾸 가는데 집에는 다 왔을 텐데/왜 이렇게 앞만 보며 남의 애를 태우나 …”

인천 출신 가수 송창식의 '한번쯤'이란 제목의 노래다. 짝사랑을 하던 여학생을 뒤따라 가던 남학생 얘기다. 가사가 애틋하다. 기대를 잔뜩 안고 기다려야 하는 학생의 심정을 나타냈다. 말을 붙여 보려고 애를 태우는 마음을 절절하게 그렸다. 50대 이상이면 학창시절 한번쯤 흥얼거렸을 터이다. 그런데 이 노래가 중구의 '긴담 모퉁이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하니, 도대체 그 길은 어떤 곳일까.

특이한 지명인 긴담 모퉁이길은 1907년 중구 신흥동과 싸리재를 잇고자 건설했다고 알려져 있다. 길 양쪽으로 길게 축대가 쌓여 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답동 신협부터 싸리재 인천기독병원까지 연결돼 있다. 송학동 홍예문(인천유형문화재 제49호)보다 1년 앞서 만들어졌지만,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무래도 홍예문이 갖고 있는 '미적 우수성'에 밀려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역사·장소성에서 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 조선 노동자들이 애용하던 길이기 때문이다. 신흥동 내 정미소들을 오가던 여성 노동자가 그들이다. 당시 조선인은 대부분 일본인들에게 밀려 지금의 중구와 동구 외곽 지역에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천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던 이들이 걸어다니며 이름을 붙였던 곳이 '긴담 모퉁이길'이다. 갖가지 개발 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온전히 남아 있어 신기할 정도다.

얼마 전 중구의회 본회의에서 '긴담 모퉁이길 일대 관광지 활성화 방안'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기존 근대건축물을 없애 버리고 인위적인 관광 시설물을 조성하기보다는 중구의 특색인 문화유산을 되살리자는 취지에서다. 박상길 중구의회 의원은 발언을 통해 답동 긴담 모퉁이길의 역사적 의미와 이야기를 고증하고, 인천시 지정문화재로 등록해 보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렇게 해서 주민과 관광객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맞다. 그러지 않아도 인천 곳곳에선 남아 있던 근대건축물들이 철거되고 있어 뜨악함을 감추기 어렵다. 주차장 조성을 이유로 사라진 애경사(중구 송월동)와 근로보국대합숙소(동구 화수동) 등이 대표적이다. 근대건축물은 개항기 인천의 역사와 시민 생활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다. 그런데도 별 역사의식 없이 사라지게 내버려 두는 일은 묵과할 수 없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어떻게 미래를 논할 수 있겠는가.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