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토박이들에게 '개건너'는 묘한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지명이다. 서곶(西串), 즉 현 가좌·석남·연희동 등 서구지역을 이른다. 갯벌을 건너야 갈 수 있는 곳이라 해서 개건너란 이름이 붙었다. 그러니까 바닷물이 넘실대며 들어오던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서곶과 인천시내를 왕래했다. 이 나루터를 통해 배다리와 송림동 시장은 성황을 이뤘다. 개건너와 김포 일대 주민들이 갖가지 농산물을 실어나르고 생필품을 구입한 데서 비롯됐다. 그러다가 나루터 인근에 '인천교'가 건설됐다. 주민들이 교통의 편리함을 누렸음은 물론이다. 도화·주안·송림동 등지로 가는 길이 일사천리로 빨라졌다. 그런데 인천교 통행 후에도 인천인들은 한참 동안 서곶을 개건너로 불렀다. 오랜 습관이기도 했지만, 개건너란 어감이 주는 '애틋함' 때문이었으리라.

인천교는 1958년 1월 완공(길이 210m, 폭 12m)됐다. 인천교 아래 바닷물길은 지금의 동암역 근처까지 이어졌는데, 저수지들을 포함해 주안염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썰물 때면 인천교를 중심으로 길고 넓은 갯벌이 드러나면서 칠게·조개잡이를 했다. 여름철이 다가오면 주안염전 둑길에선 망둥어 낚시를 하느라 바빴다. 새카맣게 온몸을 햇볕에 그을리면서 망둥어와 게 등을 잡던 기억이 새롭다. 밀물 때 '용감한' 청년들이 인천교 위에서 다이빙을 즐기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세월은 유수라고 했던가. 이제 인천교와 주안염전 등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1960년대 개발 붐을 타고 주안산업단지를 비롯해 산업용품센터와 시립병원 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인천교는 1970~80년대 대규모 매립공사로 그 일대를 평평한 대지로 조성하면서 다리로서 기능을 상실했다. 1998년엔 '원통로~인천제철 간 도로개설 공사'로 아예 자취를 감췄다. 동구는 1990년대 말 '인천교 근린공원조성사업'을 마무리했다. 옛 인천교 일대가 새롭게 탈바꿈된 것이다. 이 공원은 동구에서 가장 큰 녹지공간이다. 공업지대가 넓은 터에, 유일한 녹지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동구가 만든 지 20년 넘은 '인천교 공원'(송림동)을 싹 뜯어고친다고 한다. 오는 8월까지 대대적으로 정비해 도심형 휴양시설로 단장한다. 특히 공원 인근에 인천의료원이 위치한 점을 감안했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도록 산책로 폭을 넓히고, 황토 포장을 하는 등 자연친화적으로 조성한다. 운동기구와 쉼터 등도 마련해 시민들이 편안하게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인천교는 이처럼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어울릴 만큼 변화와 부침을 거듭했다. 비록 그 모습은 사라졌지만, 인천인의 마음 속에 개건너와 더불어 오롯이 간직됐으면 한다. 공원 이름 앞에 놓였듯, 시민들에게 인천교를 잊지 말았으면 하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가 싶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