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이후 실향민 굴 팔던 곳
수년전부터 손님 줄어 폐허로
주민 요청따라 동구 15일 철거
▲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들이 굴을 까며 생계를 이어오던 인천 만석부두의 굴막(굴 까기 작업장)이 철거된다. 갓 딴 굴을 옮기는 동안 싱싱함이 떨어지기 때문에 부두 바로 옆에 굴을 깔 수 있는 비닐 천막을 치기 시작했던 게 굴막의 시초다. 3일 인천 동구만석부두 굴막에 철거현수막이 걸려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사람이 떠나자 폐허된 굴막(굴 까는 작업장), 이젠 추억 속으로 사라지네요.”

3일 오전 10시 인천 동구 만석부두. 다 허물어져 폐허가 된 굴막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송모(75)씨를 만났다. 그는 굴막 인근에서 50여년 동안 낚시용품을 팔고 있다.

굴막의 흥망성쇠를 함께 겪은 송씨는 판자와 비닐로 지어진 굴막들이 무너져 나뒹구는 모습을 보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송씨는 “지금은 이래도 과거 이곳은 사람들로 넘쳐났다”며 “어떤 어시장보다도 활기찼던 곳이었는데 사람이 떠나자 이렇게 죽은 동네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들이 자리 잡고 굴을 까며 생계를 이어오던 만석부두 굴막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인천 동구는 주인 없이 방치돼 있는 굴막 30여채를 오는 15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영종, 용유, 무의 등 인근 바다에서 어민들이 따온 굴을 부두 바로 옆에서 까기 위해 비닐과 판자로 작업장을 만들어 사용했던 게 굴막의 시초다.

이곳에 하나둘 자리 잡은 실향민들은 굴막에서 생활하며 제철 생굴을 까 시장에 내보내거나 굴막을 찾은 손님들에게 팔곤 했다.

수년 전부터 굴막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자 자연스레 굴막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떠나갔다.

과거 60여채가 해변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30여채로 줄어들었다.

이마저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흔적만 남아 있는 상태다.

만석동 주민 정모(60)씨는 “작업자들이 겨울이면 굴막에서 모닥불을 피어놓고 손을 쬐어가며 굴을 깠다”며 “관리하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이곳을 떠나다 보니 굴막도 자연스레 없어지는 과정에 놓였다”고 설명했다.

앞서 2007년 인천해양수산청이 해안 정비를 하기 위해 구에 굴막 철거를 요청했으나 당시 굴막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반대해 무산된 바 있다. 이후 한 차례 더 정비하려고 했지만 지난번과 같은 이유로 정비하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인근 어촌계와 주민들 협조를 얻어 굴막을 철거할 수 있게 됐다.

동구 관계자는 “방치돼 있는 굴막을 정비해 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처리하게 됐다”며 “깔끔해지면 주민 환경도 좋아지고 안전사고 위험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