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2015년 살림 기록한 22권
광주 대단지 건설 약도와 시 유물로
“가족사는 물론 시대상도 담겨” 예찬

“가계부는 가족의 일상을 오롯이 담고 있는 역사입니다.”

 

전업주부 이은순(73·성남시 위례동·사진)씨는 2일 “가계부 작성의 원칙은 예산 범위 안에서 소비를 억제하는 것이다. 지출되는 돈 성격을 분류하고, 그 종류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자신이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지출한다면 순위가 낮은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러면 돈 흐름, 소비 행태의 엄정한 분석과 지출 합리화로 이어진다”며 “힘들게 번 돈을 저축으로 돌려 처음으로 집 장만했을 때 성취감과 보람, 자존감이 높아졌고 삶의 품격도 달라진다”고 했다.

그는 1993년 작은 슈퍼마켓을 하면서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빠듯한 수입이지만 규모 있는 살림으로 어떻게 해서든 종잣돈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수입의 반은 저축하고 나머지 학비, 의식비 등으로 지출했다고 한다.

“가계부를 보면 꼭 필요할 부분에 지출이 됐는지 아니면 중복 소비를 했는지 명확히 보이잖아요. 살림, 주방, 청소 요리 정보 등도 적었어요. 애경사 등 가족사와 시대상도 담겨 있어요.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담배인삼신문'에 기고한 에세이도 붙어 있습니다. 손님과 있었던 소소한 일들을 매월 한 꼭지씩 썼던 거 같아요.”

그는 1993~2015년 쓴 가계부 22권과 1971년 제작된 광주 대단지 건설 약도를 성남시 도시역사 유물로 내놨다. 광주대단지사건은 서울시의 무허가 주택 철거계획에 따라 경기 광주군 중부면(현 성남시 수정·중원구) 일대로 강제로 이주당한 주민들이 1971년 8월10일 정부를 상대로 벌인 생존권 투쟁이다.

이 유물들은 2024년 12월까지 수정구 신흥동 제1공단 근린공원 조성 터에 건립할 예정인 시립박물관(가칭 성남도시역사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그의 어두운 장롱 속에 파묻혀 있던 물건들이 빛을 봐 유물로 거듭난 것이다.

“원래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자연적으로 기록물이 쌓인 것 같습니다. 가족의 소소한 일이 담긴 가계부가 성남시립박물관에 유물로 전시된다고 합니다. 내가 가진 것보다 좋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내가 보관료를 줘야 하는 건 아닌가 싶네요.”

이은순씨는 가계부 쓰는 일은 계속될 것이라며 가계부 예찬론을 폈다.

“앞으로 100세 찍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겠지요. 일도 있고 소득도 있어야 하는데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습니다. 노후의 경제적 불안을 덜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씀씀이 경향, 나아가 생활방식이 적절한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소비 그물망을 단단히 죄어 꼭 필요하지 않은 지출을 줄여야겠지요. 우리 아이들한테 절대로 짐이 되지 않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삶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가계부 쓰기는 제가 살아 있는 날까지 이어질 겁니다.”

/성남=이동희 기자 dhl@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