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민 능동감시 움직임
갈등 해소 상생방식 큰효과에
노동자 보호 익명 민원함 설치
주민이 고충해결 촉구 진풍경

안타까운 죽음이 경종을 울린 것일까. 최근 경기도내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경비원을 상대로 한 부적절한 행태, 이른바 '갑질'을 감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주민의 폭언·폭행에 시달리다 사망한 서울시 경비원의 이야기 등을 접한 이들이 “더 이상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동요한 것이다.

31일 지역사회에 따르면 도내 일부 아파트에서 관리 등 업무로 고용된 경비원과 같은 단지 노동자들이 혹시 모를 피해를 받지 않도록 나섰다.

김포시 장기동 1500여 가구의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 21일자로 '관리사무소 직원, 경비원, 환경미화원 익명 민원함'을 설치하기로 의결했다.

민원함은 경비원 등 노동자들이 업무에 대한 불만 등 요구사항을 담게 돼 있다. 예를 들어 '주민으로부터 불합리한 지시를 받고 있다'는 등 의견을 담을 수 있다.

접수된 의견은 입대위 차원에서 검토하고, 방안을 찾는다. 사안이 중대할 시 공식 회의를 열어 이해관계자들을 중재한다. 일종의 가교 역할인 셈이다.

주민과 경비원 간 얼굴을 붉히는 일은 종종 일어나기 마련인데, '남의 일'로 치부하면 더욱 강한 다툼 등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게 입대위의 판단이다.

하창훈 입대위 회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시스템의 본질은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좋은 뜻이다. 지난 15일부터 7일 동안 진행된 투표에서 무려 86.3%(126표) 주민이 찬성했다. 도입의 결정적 계기는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인 고(故) 최희석씨 사건이었다.

안건 가결 뒤, 하 회장은 “'기사 좀 났다고 굳이 민원함까지 두느냐'고 할 수 있지만, 미연에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실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곳은 2017년부터 녹음 전화기·익명 민원함(주민 대상) 등 색다른 운영 방식을 시도했고, 실제 갈등 해결에 큰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하 회장은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오랫동안 노동자분들과 상생해왔다. 아파트의 가치상승은 이런 마음으로 좌우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아파트 경비원 등 노동자들은 “주민들의 배려에 큰 감동을 받았으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고 환하게 웃었다.

용인 남사면에 위치한 2300여 가구 B아파트에서는 경비원이 고충을 겪게 되자, 주민들이 해결을 촉구하고 나서는 풍경도 벌어졌다.

발단은 경비원 초소 때문이었다. 앞서 초소는 야간에 건너편 단지 내 가구를 볼 수 있다는 논란으로 필름과 블라인드가 시공됐다.

사정을 알게 된 일부 주민은 “경비원 노동자가 답답한 환경에서 일하게 됐다”며 공분했고, 입대위 측에 재검토 의견도 접수했다.

다만 입대위와 관리사무소 측은 다소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인 점을 감안, 향후 주민과 소통하면서 다각적인 검토를 해볼 방침이다.

과거부터 두터운 공동체 의식으로 노동자를 보호했던 아파트들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2017년 입주 이후 노령 경비원 대상 '단지 순찰제'를 폐지하고, 쓰레기 치우기 등을 주민이 대신하며 업무 부담을 줄여 주목받았던 수원 이의동 C아파트는 재차 체계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았다.

박요한 C아파트 입대위 회장은 “불행한 소식에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며 “주민과 노동자 모두 만족도가 높지만, 뭔가 더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둘러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