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은 간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제 생각에 반박할 분은 많겠지만 제 느낌으로 그는 모 아니면 도였죠. 그는 장단점을 인식하고 수용하는데 겸손하고 솔직했습니다. 그래서 문화대혁명 당시 그의 폭정을 아는 지식인들도 그를 쉽게 부정하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산주의도 장단점 있다. 경험은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의 총합이다. 공산주의의 근본이 마르크스인 것은 맞다. 그러나 칼 마르크스의 출발은 칸트와 헤겔이니 다 배워라. 마르크스만 달달 아는 너희들은 절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을지문덕에게 치욕의 패배를 당하고 고구려를 삼키겠다는 야욕을 포기한 수나라의 황제 양제는, 아버지를 독살하고 제위에 오른 야심만큼 저만 잘 살고 배부르면 장땡인 한량이었습니다. 그가 한 일이란 그저 폭군의 대명사 주나라 걸왕 마저도 뒷짐 져야 할 못된 짓뿐이었지요. 주지육림의 대명사 걸왕도 차마 기가 막혀 웃어야 했으니 그의 폭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잠시 그의 폭정 몇 개 들여다볼까요. '현인궁'이라는 아방궁에 버금가는 궁궐축성에 나라 금고 반 거덜 내기는 맛보기, 우리 대운하 사업에 버금가는 '통제거'라는 운하 축성과 어도라는 버드나무길 조성에 백성 혈세 제로로 만들기. 장강 유람용 어좌선 수만 척 축조에 수나라 금고 거의 떡실신, 겨울철 대비 비단 꽃잎 치장에 궁내의 모든 궁녀 동원 야단법석 등, 아울러 국가의 각종 피로연에는 수만명이 한 달 이상을 연주하고 놀아대었다고 야사가 전하니 이런 패악도 없었습니다.

그에 비해 당나라 태종은 비록 역사상 최악의 마녀를 후궁으로 두었고(측천무후), 고구려의 호태왕에게 씻을 수 없는 패배를 당하기도 했지만, 중국 역사상 최대의 명군(名君)입니다. 그 이유를 나는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기질 중 수용성과 경고성을 해석하는 기준의 차이에서 찾곤 합니다. 태종의 아버지인 태조 이연은 똑똑하고 공부할 줄 아는 무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수나라 양제의 폭정을 틈타 너무나도 쉽게 장안을 함락했고, 그의 아들 태종(이세민)은 수양제의 폭정을 반면교사로 삼아, 중국 역사상 가장 칭송받고 존경받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지요(貞觀의 治).

어느 왕조, 어느 국가나 새로이 시작하는 그루터기에는 사연도 많고 이야기는 부지기수입니다. 누구나 시작할 때는 잘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제5공화국 전두환의 취임일성도 바로 '정의 사회 구현'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게 어디 쉽게 되나요? 사람이라는 고등동물로 태어나 최소한의 지구상의 주인으로 행세하고픈 열망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사는 동안은 최대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기본욕구가 없는 인간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사회의 혼란은 모두 그 기본욕구를 재울 줄 모르는 인간의 탐욕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요. 내 자신의 존재를 잘 알면서도 마오쩌둥이나 당 태종 같이 반면교사의 교훈을 새기며 지켜갈 줄 아는 지혜로운 삶의 혁신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의 삶은 악다구니와의 대장정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메이꽌시, 만만 라이 괜찮으니까 천천히 가세요.' 그렇습니다. 동북공정으로 우리어 역사를 부정하는 거만한 중국인이 아니라면, 욕망을 여유로 품을 줄 아는 그들의 지혜처럼 우리도 이제 조급성을 버리고 천천히 가도 될 것 같습니다. 천천히 가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가게 마련입니다. 물론 그 목적지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다 가는 곳, 삶의 궁극적인 도달점이지요.

 

 

박철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