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의사의 조선 여행기…생생한 인천 담았다

보조끼 데죠, 1907년 한중일 여행
제물포-서울-거문도- 부산 열흘 머물러

한국인·흰옷·어시장·초가집·갓·거리
근대 제물포항 풍경 사진으로 기록

 

1908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일본제국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인천 제물포항에는 항구 축조 공사가 시작됐다. 일제는 큰 배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방파제를 쌓고 부두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제물포항은 외세와의 조약이 맺어진 지 20여년 만에 조그마한 어촌 마을에서 국제 항구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당시 인천은 새로운 문물을 교류하는 개항 도시이면서 침략과 수탈이 이뤄지는 기반 도시이기도 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도 머물 수 있는 조계지와 영사관이 자리했으며 근대 상인들이 거래할 수 있는 신포동 수산시장 등이 만들어졌다. 영화가 상영되는 애관극장과 제물포구락부 등에선 화려한 사교의 장이 열린 반면 조계지 바깥에는 도시 불빛에서 밀려난 한국인들만의 마을도 꾸려졌다.

이때의 인천 제물포항 풍경을 생생한 사진으로 남긴 외국인이 있다. 헝가리인 의사 ‘보조끼 데죠(Dr. Bozóky Dezső)’이다. 그는 군함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ph I)호를 타고 1907년 3월부터 1909년 4월까지 26개월간 중국에서부터 한국, 일본을 차례로 방문했다. 이전까지 한국과 일본을 여행할 기회가 없었던 그는 조선땅이라는 이국적인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데 집중했으며, 고국으로 돌아간 1911년에는 직접 채색한 사진들을 수록한 '동아시아에서의 2년(Two Years in East Asia)'라는 여행기도 내놨다. 

 

▲ 1908년 당시 개항장 일대 거리 풍경.
▲ 1908년 당시 개항장 일대 거리 풍경.

 

"배에서 바라본 푸른 산 앞에 놓인 제물포는 그럴싸해 보였다. 집집마다 수천 개의 전등으로 빛을 내고 있었고 산속에는 웅장한 유럽풍의 성곽, 그리고 시골집들의 큰 유리창은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1908년 7월14일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한 보조끼 데죠는 낯선 조선땅의 첫인상을 이같이 기록했다. 개항도시인 인천에는 청과 일제 등 각국 조계지가 형성되는 동시에 유럽식의 건물들이 들어서는 중이었다. 보조끼 데죠는 반듯하게 정비된 도로를 걸으며 개항장을 둘러봤다. 지금은 자유공원으로 불리는 '각국공원' 인근에서 바다가 보이도록 전경 사진을 찍었고 일본공원 신사에 방문해 참배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의 반짝이는 호기심은 흰옷을 입은 한국인들에게도 이어졌다.

"항만은 활기와 생기가 넘쳤다. 근육질의 한국인들이 등에 특이한 모양의 짐 나르는 도구를 고정해 광택이 나는 기둥, 철 레일, 자루를 나르고 있었다. (중략) 도시 중심가에는 큰 어시장이 있었으며 이 주변에서 한국인의 삶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었다."

당시 제물포항에서는 배로 실어온 물건들을 내리고 나르는 한국인 하역 노동자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수 설비까지 갖춰진 조계지 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생선과 고기 등을 판매하는 시장을 찾아볼 수 있었다. 보조끼 데죠는 근대 도시의 풍모를 갖춘 조계지 옆에 한국식 초가집들이 즐비한 모습을 보며 제물포항이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안고 있다고 여겼던 듯하다. 그는 일본 사창가인 유곽 거리는 물론,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소에 짐을 싣고 다니는 농부들의 모습까지도 그의 카메라에 담아냈다.

이후 그의 여행은 서울로 이어졌다. 7월16일 경인선을 타고 서울에 도착한 보조끼 데죠는 남대문, 원각사지 십층석탑 등을 구경하며 하루짜리 짧은 여행을 즐겼다. 다음날 그는 배를 타고 거문도와 부산 등지를 방문하며 열흘간의 조선 여행을 마무리한 채 일본으로 향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은희 기자 haru@incheonilbo.com

 


 

 인천시립박물관 '보조끼데죠 1908: 헝가리 의사가 본 제물포'전

흑백 사진에 채색...당시 모습 오롯이

 

인천시립박물관은 오는 7월5일까지 박물관 1층 갤러리 한나루에서 '보조끼 데죠 1908: 헝가리 의사가 본 제물포'라는 제목의 특별 전시회를 진행한다. 군의관이었던 헝가리인 보조끼 데죠(Bozóky Dezső )가 1907년부터 1909년까지 26개월간 동아시아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 가운데 조선 풍경을 인화한 자료들이다. 그는 1908년 7월 중국 취푸에서 출항해 인천 제물포항에 첫발을 뗀 이후 서울, 거문도, 부산 등지를 여행했다. 이방인이었던 보조끼 데죠는 흰옷을 입은 조선인들의 모습을 주로 들여다보았다. 그는 갓을 쓴 선비, 거리를 걷는 여인 등 낯선 장면들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 흑백 사진에 채색 유리 슬라이드를 얹는 후속 작업도 진행했다.

시립박물관은 주한 헝가리 대사인 '초머 모세(Csoma Mózes)'의 특별 강연으로 당시 외국인들이 바라본 조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주제는 '헝가리인들의 눈으로 본 한반도: 19세기 말부터 6·25전쟁까지'이며 다음 달 11일 오후 3시 특강이 진행된다. 강연자로 나서는 초머 모세 대사는 한국학 학자로, 헝가리 최초 한국학과가 만들어진 부다페스트 외트뷔시 로란드대학교의 학과장을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이번 전시 사진들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호프 페렌츠 동아시아 박물관(Ferenc Hopp Museum of Asiatic Arts, Budapest)에 소장한 자료들이다. 지난해 한국과 헝가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첫 전시회가 열린 이후 순회 형식으로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