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세상에 '나'를 깨우는 소녀의 목소리
▲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 중 청부업자 조가 아동 성매매 조직으로부터 니나를 구출하는 장면.


“난 낙원에도 가봤지만, 나에게는 가본 적이 없어요.”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2017)' 중 주인공 조는 자신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남자 옆에 나란히 누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샬린의 'I've never been to me' 가사를 함께 따라 부른다. 샬린은 달콤한 노랫소리로 '낙원은 거짓이고 우리가 만들어낸 사람과 장소들은 모두 환상'이라고 속삭인다. 이 노래가사는 “'나'라는 실체가 있는가? '세상'은 실재하는가?”라는 영화의 존재론적 물음과 맞닿는다.

제70회 칸영화제에서 호아킨 피닉스에게 남우주연상을, 영국의 젊은 거장 린 램지 감독에게 각본상을 안긴 이 영화는 조나단 에임스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스릴러 영화이다. 끔찍한 유년기와 전쟁 트라우마로 늘 자살 충동에 휩싸이는 청부업자 조는 아동 성매매 조직에 의해 납치된 상원의원의 딸 니나를 구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그 과정에서 거대한 권력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감독은 절제된 대사와 액션, 정제된 화면, 짧고 빠른 리듬감의 편집 등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망치음 같은 강렬한 음향 음으로 텅 빈 심장에 공명을 일으키며 강한 울림을 남긴다.

 

페미니즘 시각으로 불교 철학을 투영한 존재론적 물음

“15, 14, 13, 12, 11 …”, “43, 42, 41, 40 …” 짙은 어둠 속에서 숫자를 거꾸로 세는 어린 조의 가냘픈 목소리는 부유하는 먼지들과 함께 조의 거친 목소리와 교차한다. 오프닝을 연 '숫자 거꾸로 세기'는 영화 중간 중간에 등장하며 상징적인 기호가 된다. 조와 니나 모두 절망의 순간에 '숫자 거꾸로 세기'를 하지만 그 목적은 서로 다르다. 조는 가정폭력, 전쟁 등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 침잠해있는 '나'라는 실체를 없애는 자기 소멸을 꿈꾸며, 니나는 거대 권력의 지배에 억눌려 소멸해가는 '나'라는 실체를 되살리는 자기 생성을 꿈꾸며 숫자를 거꾸로 센다. 그래서 조는 집에서, 플랫폼에서, 물속에서 수시로 '나'를 죽이려고 하고, 니나는 차창 유리를 연신 손으로 닦아대며 내리쬐는 도시 불빛과 쏟아지는 빗방울에 침식당한 '나'를 살리려고 애쓴다. 그들의 이러한 애처로운 몸부림은 사실 '나'라는 실체가 있다는 집착과 세상이 실재한다는 망상에 기인한다. 영화는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불교의 공(空)사상과 연기법(緣起法)을 투영시켜 '나'와 '세상'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던진다. 나중에 니나는 주지사를 죽임으로써 폭력과 지배가 만연한 권력과 위계로 질서 지어진 가부장적 세계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닌 변화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이는 세상은 순간마다 생멸, 변화하는 무상(無常)한 것으로 실재가 아니고 '나'라는 존재도 인연 따라 연기되어진 공(空)한 것으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불교의 깨달음과 일맥상통한다. 한편 “우리 어디로 가요?”라고 묻는 니나의 물음에 망연자실한 얼굴로 멍하니 앉아 있던 조는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잠시 후 니나의 깨움에 되살아난 조는 비로소 무명(無明)에서 깨어나 빨대로 남은 음료수를 다 비운다.

그들이 떠난 자리엔 텅 빈 테이블과 의자, 실체 없는 대화 소리, 그리고 관객들만 외로이 남았다. 오랫동안 텅 빈 공간을 멍하니 응시해야 하는 관객들은 망연자실할 뿐이다. 이 때 관객들의 귓가에 니나의 음성이 들린다. “나가요. 아름다운 날이에요!”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