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얘기다. 중학교 입학식 날 교장 선생님의 훈화 중 한마디가 귀에 콕 박혔다. “동해안의 최고 명문 중학교에 들어온 여러분, 반갑습니다.” 지금은 그 고장의 상징이 된 포항제철(포스코)도 없었던 빈한한 소도시의 학교였다. 그러나 순진하게 '정말 동해안 최고 명문인가'하며 속으로 동해안의 여러 도시들을 꼽아보았다. 울산, 강릉, 원산, 함흥, 청진 등을 떠올려 보았으나 비교의 기준이 나올 리 없었다. 당시에는 이런 식의 자화자찬이 흔했던 것 같다. '한강 이남에서 최고'라는 치켜세우기도 있었다. 하기야 강남이 개발되기 한참 전이니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었다. 애교 수준의 자긍심 고취 표현이니 굳이 탓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자화자찬이든 칭송이든 과하면 거북하다. 1970년대 유신정권 말기, 과분한 칭송이 넘쳐났다. 어느 관선 유정회 국회의원의 박정희 대통령 칭송은 오래 회자됐다. “조국근대화를 향한 각하의 뜨거운 눈동자 가장자리에는 항상 눈물이 괴어 있습니다. 풍만한 인정과 뜨거운 집념의 영도자를 받들어 모시는 것은 나의 행복입니다.” 이태원 클럽발 감염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 그래서 코로나19 대처에 있어서도 자화자찬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지 않았느냐는 자성이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모범 방역'은 사실이지만 그간 우리 스스로 너무 남발한 느낌이다. 해외 언론들이 그렇게 평가하도록 내버려두고 더 경각심을 다잡았어야 했다. 과한 자화자찬은 후유증을 남기는 것 같다. 엊그제 문재인 정부 출범 3주년을 축하하는 경쟁적인 칭송들도 좀 과한 느낌이다.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과제를 만드는 태종과 같다. 이제는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됐다.” “3년 전 국민의 선택과 환호는 지금 더 뜨거워지고 있다.” “밤낮없이 일하는 대통령을 모시고 대한민국을 대변한 건 제 일생에 큰 영광이었다.” 어디까지 갈 지를 모를 정도다.

▶경기도가 '새로운 경기도 노래' 제작에 들어가 있다. 친일잔재 청산 작업의 하나다. 도민들을 대상으로 한 노랫말도 '공정한 공모전'을 통해 선정한다고 한다. 모두 1529건이 접수돼 15개 노랫말이 후보작으로 선정됐다. 그런데 일부 노랫말들에는 민선 7기 경기도정의 슬로건인 '공정'이 너무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다들 부럽대 좋겠대/새롭고 공정한 세상/좋아요 좋아요 이 모든게 가능한/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 자화자찬이 넘쳐난다. 공정이라는 가치는 입으로, 노래로 보다 청정계곡 복원 같은 사업에서 성취되는 것 아닌가. 경기도민들이 앞으로 행사나 모임에서 '다들 부럽대 좋겠대'라는 노래를 합창하는 풍경이 그려진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