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경영권 승계'와 관련성이 쟁점
검찰, 이달 말 사법처리 방향 결정 방침…이재용 처분 여부 주목

 

▲ [연합뉴스 자료사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싼 삼성의 경영권 승계 의혹을 놓고 1년6개월간 진행된 검찰의 수사가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이제 사실상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의 소환만 남은 셈이다.

검찰은 이달 말까지 수사를 모두 마무리하고 공소유지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막판 혐의 다지기에 들어간 상태다. 실무자부터 삼성의 전·현직 고위급 임원까지 관련자 수백명에 대한 조사도 마쳤다.

◇ 검찰, 이르면 이번주 이재용 피의자 소환…비공개로 출석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이르면 이번주 중 이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다만 지난해 11월 공개소환 전면 폐지로 출석은 비공개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 부회장이 검찰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는 것은 2017년 2월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조사 이후 약 3년3개월 만이다. 당시 이 부회장은 구속영장 재청구 끝에 특검에 구속됐다.

검찰은 이 부회장을 상대로 2015년 5월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과정과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이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이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검찰은 최근에는 최지성(69)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64)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 최치훈(63)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 이영호(61) 삼성물산 사장, 정현호(60)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사장), 김태한(63) 삼성바이오 사장 등을 줄줄이 소환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의 회계 사기 혐의는 물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직전 삼성물산의 회사 가치가 비정상적으로 떨어진 것도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그룹 차원에서 계획한 일이라고 의심한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일 대국민 사과에서 삼성을 둘러싼 많은 논란이 경영권 승계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관련 의혹이나 혐의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검찰의 소환 조사에는 협조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일부 사실관계는 인정하더라도 혐의 유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방어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 증선위 고발로 시작…분식회계 넘어 '경영권 승계' 수사 확대

수사의 출발점인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은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고발로 불거졌다. 증선위는 삼성바이오가 2015년 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의 회계처리 기준을 바꿀 때 고의적 분식회계가 있었다고 봤다.

삼성바이오는 2015년 말 삼성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며 종속회사(단독지배)에서 관계회사(공동지배)로 회계처리 기준을 바꿔 장부상 회사 가치를 4조5천억원 늘린 의혹을 받는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현 반부패수사2부)는 내용을 검토한 뒤 삼성바이오의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를 넘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이 부회장의 승계 과정 연관성을 규명하는 쪽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이후 검찰 인사로 이 사건은 특수4부가 맡게 됐고, 올해 초 조직 개편으로 부서 이름 등이 바뀌면서 경제범죄형사부에서 수사를 이어왔다.

검찰은 합병을 전후한 시기의 사업실적 등 경영권 승계 의혹을 뒷받침할 단서를 찾아나갔다.

이와 관련, 삼성물산은 2015년 상반기 신규주택 공급량이 300여 가구에 불과했으나 같은 해 7월 제일모직과 합병 후 서울에 1만994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2015년 하반기 서울 시내 전체 일반분양 물량 중 30%다.

2015년 1∼6월 삼성물산 매출액은 12조2천80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1% 감소했다. 주가는 2015년 들어 다른 건설사들과 달리 오르지 못하다가 4월 중순 이후 계속 떨어졌다. 당시 합병 비율 1(제일모직) 대 0.35(삼성물산)는 자본시장법 규정에 따라 이사회 직전 1개월 주가를 기준으로 결정됐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려 삼성물산과 합병하고,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적용된 합병 비율을 정당화하려고 삼성바이오에서 분식회계를 벌였을 가능성도 살폈다.

◇ 김태한 영장 기각·조국 수사·코로나19 등 이유로 수사 지연

검찰은 지난해 5월과 7월 두 차례 김태한 삼성바이오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당시 검찰은 김 사장을 넘어 이 부회장 등 윗선을 겨냥한 수사에 속도를 내려고 했지만,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후 검찰은 적극적으로 구속수사에 나서지 못했다. 다만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증거를 인멸한 혐의 등으로 삼성전자 재경팀 이모(57) 부사장 등 8명만 구속기소 했다. 이들은 지난해 말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윗선의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검찰의 분식회계 수사는 지난해 11월 말 마무리됐고 합병 관련 수사가 남았다고 했지만, 뚜렷하게 결론이 나온 것은 없었다.

물론 수사가 지연된 내부적인 이유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전체가 지난해 초까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에 투입됐고, 지난해 중순 이후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 수사에도 대거 투입되면서 수사력이 분산된 측면도 있다.

올해 초 검찰 인사와 조직 개편도 영향을 미쳤다. 특수2부장으로 삼성바이오 수사를 지휘했던 송경호 3차장은 수원지검 여주지청장, 수사 초기부터 총괄했던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은 부산고검 차장으로 전보됐다.

이 밖에도 올해 2월 말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소환조사 최소화 등 방침이 일선에 내려지면서 전체적인 일정이 두 달가량 연기된 점도 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을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포함한 신병처리 방향 등 사건 관련자들의 처분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관련자들에 대해 일괄적으로 불구속기소 하는 방안을 선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 부회장은 어떤 처분을 받을지 관심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