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여성화자 내세워 사랑·원망·일탈 노래
▲ 조영석(趙榮 ) 作 `바느질': 조영석은 조선후기 화가이다. 이옥 선생의 시는 여인들의 이러한 생활상을 그려냈다. (간송미술관 소장)

 

<이언> 65수는 글을 읽는 재미가 흥성거린다. ‘이언’이 ‘상말’이기 때문이다. 실상 이 <이언> 한편에는 생생한 표정을 지닌 다양한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때론 희망을, 때론 원망을 토로한다. 등장인물도 다양하다. 신혼의 단꿈에 젖은 새색시, 외입하는 남편을 닦달하는 아내, 노골적으로 남성을 유혹하는 기녀도 등장한다. 장면도 혼인을 올리는 것에서부터 책을 읽으며 바느질하는 모습, 밥상을 집어 던지는 부부싸움 장면에 친정에 가면 늦잠을 잘거라는 넋두리까지 18세기 백성들의 보편적 삶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조선 말(이언)이 아니면 담아낼 수 없는 조선 풍경이다. <이언>은 ‘아조(雅調)’ 17수, ‘염조(艶調)’ 18수, ‘탕조(宕調)’ 15 수, ‘비조(_調)’ 15수 등 4부로 구성되었다. 그 중 ‘아조’는 도덕적이고 일상적인 감정을, ‘염조’는 사랑을, ‘비조’는 원망을, ‘탕조’는 일탈을 노래하였다.

 

<이언>은 여성의 삶을 일인칭 여성 화자의 시점에서 풀어내고 있다. 지금이야 그렇지만 저 시절 남성 한문학 작가가 작품 속에 여성 화자를 내세운다는 것은 여간해선 어려운 일이었다. 어투부터 여성으로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문을 쓴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그래서인지 선생은 토속적인 말과 대화체를 적극 수용하였고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을 썼다.

 

이제 각 조에서 몇 편씩을 읽어 보겠다. (첨언: 읽으면 느끼는 것이기에 필자의 설명은 오히려 사족이 될까 저어하여 붙이지 않는다. 독자들이 읽고 느낀 ‘그것’이 바로 선생이 이 시를 지은 ‘그 뜻’일 것이다. 해석은 이 첨언과 각주 몇으로 대신한다.)

 

아조(雅調)

 

“아(雅)는 떳떳함이요, 바름이라. 조(調)는 곡조이다. 무릇 부인이 그 부모를 섬기고, 그 남편을 공경하며, 그 집에서 검소하며, 그 일에 근면함은 모두 천성이 떳떳함이고 또한 사람 도리가 올바름이라. 그러므로 이 모든 작품은 어버이를 사랑하며 남편을 공경하고 근면하여 검소한 일을 일컫는다.”

 

1. 서방님은 나무 기러기 잡으시고 _執木雕雁

첩은 말린 꿩을 받들었지요 妾捧合乾雉

그 꿩이 울고 기러기 높이 날도록 雉鳴雁高飛

서방님과 제 정은 그치지 않을 테지요 兩情猶未已

 

4. 친정은 광통교 다리께고요 兒家廣通橋

시댁은 수진방 골목인데도 夫家壽進坊

언제나 가마에 오를 때에는 每當登轎時

눈물이 치맛자락 적신답니다 猶自淚霑裳

 

5. 하나로 결합하였으니 검은 머리가 一結靑絲髮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하기로 약속했지요 相期到_根

부끄럼 타지 않는 데도 너무나 부끄러워 無羞猶有羞

서방님과 석 달 동안 말도 못했어요 三月不共言

 

6. 어려서 궁체를 배워서 早習宮體書

이응에 살짝 뿔이 났지요 異凝微有角

시부모 보고 기뻐하신 말 舅姑見書喜

“언문 여제학 났구나” 諺文女提學

 

위 시에서 ‘이응’은 한글 이응(異凝)을 말한다. 우리 ‘옛이응’(ㆁ)은 약간 뿔처럼 솟았다. 궁체(宮體)는 궁녀들이 쓰던 아담한 서체다. 시부모는 이응을 궁체로 썼다고 여제학(女提學)이 났다고 한다. 예문관과 홍문관의 최고 책임자인 대제학(大提學)을 여제학으로 슬며시 바꾼 것이 다. 선생의 글쓰기는 이렇게 의뭉하고 눙치며 천연스럽다. 선생은 ‘이응’처럼 우리말을 한자로 바꾸기를 즐겼다. 족두리(簇頭里), 아가씨(阿哥氏), 가리마(加里麻), 사나이(似羅海) 등을 시어로 즐겨 활용하였으니 우리말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멋이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