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바다야"…우리가 가해자이자 피해자

 

 

 

 

 

▲ 백령도 하늬해변에서 주운 중국산 페트병.
▲ 백령도 하늬해변에서 주운 중국산 페트병.
▲ 천연기념물인 백령도 사곶해변에 쌓인 폐그물과 중국산 페트병.
▲ 천연기념물인 백령도 사곶해변에 쌓인 폐그물과 중국산 페트병.
▲ 천연기념물인 백령도 사곶해변에 방치된 스티로폼 뭉치.
▲ 천연기념물인 백령도 사곶해변에 방치된 스티로폼 뭉치.
▲ 북태평양 미드웨이 섬에서 알바트로스 어미 새가 새끼에게 플라스틱을 먹이고 있다.  /자료=크리스 조던의 다큐 <알바트로스> 갈무리
▲ 북태평양 미드웨이 섬에서 알바트로스 어미 새가 새끼에게 플라스틱을 먹이고 있다. /자료=크리스 조던의 다큐 <알바트로스> 갈무리

 

서해5도 해안 몇분 거리에 페트병 가득

해양 플라스틱 중 폐어구·폐부표가 최다

백령도 사곶해변 그물·스티로폼 엉켜있어

인천, 168개 섬 있지만 환경정화선 1척뿐

어미새가 플라스틱 먹이는 비극 현재형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4시간여 물살을 헤치면 닿는 서해5도 최북단 백령도. 그중에서도 천연기념물 제393호인 '감람암 포획 현무암'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멸종위기 해양보호생물인 점박이물범이 바위에서 쉬는 모습을 맨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늬해변. 지난가을 북녘땅 장산곶이 손에 잡힐 듯 건너다 보이는 하늬해변을 걸었다. 바닷가를 둘러싼 철책, 정박을 막으려고 장대처럼 박아놓은 용치들로 '닫힌 바다'를 실감했다. 바다는 닫는다고 닫아지지 않았다.

아직은 가로막힌 서해5도 바다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존재는 따로 있었다. 황해를 헤엄치는 점박이물범과 그 위를 나는 철새가 우습다는 듯이 바닷가를 점령한 쓰레기였다.

현무암 분포지 인근 해변을 걸은 지 10분. 불과 50여m에서 주운 페트병이 수십 개 쌓였다.

이들 페트병 포장지 열에 여덟아홉은 한자가 쓰여 있었다. 육안으로도 보이던 불법조업 중국어선에서 내다버린 건지, 중국에서 해류를 타고 온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백령도에서 버려진 쓰레기가 아님은 분명했다.

철조망 사이에서는 1년 전 생산일자가 찍힌 '5월1일 경기장' 상표의 딸기우유팩도 눈에 띄었다. 한글이 적혔지만 이마저도 북에서 남으로 바다를 건너온 쓰레기였다.

▲한글과 한자가 공존하는 해변

국내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마다 6만7000t 정도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 정부가 발표한 '해양 플라스틱 저감 종합대책'을 보면, 외국에서 넘어온 해안 쓰레기 비중은 2%를 차지한다. 발생원별로 보면 높지 않은 수치지만, 이 가운데 대다수인 96%는 황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중국에서 유입됐다. 전라남도는 '해양쓰레기 발생량 조사'(2018) 보고서를 통해 중국 육상에서 전남 해역으로 유입되는 쓰레기를 연간 최대 2만1000t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중국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해양 쓰레기를 모니터링한 일본은 가해국으로 한국을 지목해왔다. 이를 한·일 환경 현안으로 부각시키며 어구·어망 관리를 문제삼기도 했다.

사실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폐어구·폐부표다.

어업 과정에서 회수되지 않고 버려진 어구와 부표는 연간 3만6000t에 이른다. 해양수산부·환경부·해양경찰청이 수립한 '제3차 해양쓰레기 관리 기본계획(2019~2023)'을 보면, 어구 적정 사용량은 5만t이지만 실제 사용량은 이보다 2.5배 많은 13만t(2014년 기준)으로 추산된다는 진단도 나왔다.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하늬해변에 이어 찾아간 백령도 사곶해변에는 모래와 함께 폐어구가 쌓여가고 있었다. 사곶사빈으로도 불리며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된 해변 입구부터 공처럼 생긴 검은 플라스틱 부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천연 비행장으로 쓰였을 정도로 알갱이가 작고 단단한 모래사장에는 한자가 적힌 마대자루가 박혔다. 사곶해변을 둘러싼 옹벽을 따라 통발과 뒤엉킨 그물, 스티로폼 뭉치도 가득했다. 한글과 한자가 적힌 쓰레기가 공존하는 풍경이었다.

해안선 길이가 1066㎞에 이르고, 168개 섬을 간직한 인천에는 해양환경정화선이 '씨크린(Sea Clean)호' 1척뿐이다. 씨크린호는 인천 앞바다와 섬을 돌며 해양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지만, 2009년 이후 10년간 연평균 수거 실적은 57.9t에 그친다.

인천시의 해양쓰레기 수거량은 2009년 1만3746t에서 2018년 4590t으로 줄었다. 해양 쓰레기가 줄어든 것처럼 보여도 통계상 착시일 뿐이다. 해양 쓰레기 발생량이 아닌 치워낸 수치인 까닭이다. 해양환경정보포털 자료를 보면 같은 기간 플라스틱을 포함한 전국 해양 쓰레기 수거량은 5만9438t에서 9만5632t으로 대폭 늘었다.

백령도 해안 모습은 해양 쓰레기 실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해양 쓰레기는 발생원이 복잡하고, 제대로 수거되지 않는다. 특히 접근성이 떨어지는 섬, 그리고 바닷속은 해양 쓰레기 사각지대로 꼽힌다. 폐기물 평균 수거·처리 단가를 비교해보면 육상 쓰레기는 1t당 21만원인 반면, 해안 쓰레기는 35만원, 침적 쓰레기는 149만원에 이른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난 2018년에만 762억원을 쏟아부었지만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수거량(6만1000t)은 발생량을 따라가지 못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셈이다. 이렇게 쌓여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11만8000t에 이를 것으로 정부는 진단한다.


▲황해 주변국,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모든 육지에서 3000㎞ 넘게 떨어진 북태평양 미드웨이 섬. 해변에 내려앉은 새들 사이로 보이는 페트병과 검은 공 모양의 플라스틱 부표. 2019년 제16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소개된 다큐 <알바트로스> 속 모습은 백령도와 닮았다. 그리고 바다를 가로질러 날아온 알바트로스 어미 새가 새끼 부리에 먹이인 줄 알고 게워내는 플라스틱 쓰레기. 다음 장면에서 새끼는 고통스럽게 눈을 감고, 이물질로 가득한 뱃속이 화면을 채운다. '미제 사건'이었던 알바트로스들의 의문사가 풀리는 순간이다.

해양 쓰레기는 해류를 따라 장거리를 이동한다. 바다 위를 떠도는 플라스틱에 국제사회 관심이 없진 않았다. 유엔환경총회(UNEA)는 2014년 해양 플라스틱 대응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저감 행동과 구속력 있는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미 1972년 독일, 프랑스 등 북해·발틱해 주변 12개국이 폐기물 투기에 의한 해양오염을 방지하는 '오슬로 협약'을 맺었다.

황해 물길이 뻗어가는 바다에서 교류를 이어왔던 아시아의 눈도 점차 해양 쓰레기로 향하고 있다. 2018년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선 해양 플라스틱 폐기물이 의제로 다뤄졌다.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해양 플라스틱 폐기물의 예방·감소·관리를 위한 행동 계획이 담긴 성명을 채택했다.

알바트로스의 눈물은 먼 바다 얘기가 아니다. 2017년 6월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붉은바다거북이 충남 보령군 소길산도에서 죽은 채 그물에 걸렸다.

해양수산부 지정 보호대상해양생물이기도 한 붉은바다거북이 황해에서 발견된 건 이때가 두 번째 사례였다. 부검 결과 붉은바다거북 뱃속을 가득 채운 건 중국과 한국의 폐비닐이었다. 2019년 국립생태원은 폐사체로 발견돼 부검한 바다거북 40마리에서 모두 플라스틱이 나왔다고 밝혔다.

수십년의 경고에도 바다를 떠도는 플라스틱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해양 쓰레기는 버리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생활 쓰레기는 며칠만 지나도 집앞에, 길가에 쌓이지만 해양 쓰레기는 다르다. 파도에 휩쓸려 어딘가로 떠내려간다. 누구의 것이었는지도 모르고,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알바트로스>를 찍은 미국의 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은 "우리 시대의 현실을 직면할 용기가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해양 쓰레기 문제에서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미세플라스틱의 역습]


담배꽁초 쌓으니 언덕…먹이사슬 거쳐 밥상에 올라올 수도

 

▲ 2017년 8월 백령중고 학생 20명이 3일간 모은 담배꽁초 1만7000여개비.  /사진제공=백령종합사회복지관
▲ 2017년 8월 백령중고 학생 20명이 3일간 모은 담배꽁초 1만7000여개비. /사진제공=백령종합사회복지관

하수구에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는 어디로 갈까. 우수로를 통해 강으로 유입되는 담배꽁초는 결국 바다로 향한다. 필터가 대부분인 꽁초는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다. 필터는 플라스틱 섬유인 '셀룰로스 아세테이트'로 만들어진다.

미세플라스틱은 5㎜ 이하 크기다. 플라스틱 제품이나 스티로폼 등이 조각나는 것말고도, 의도적으로 제조된 경우도 있다. 섬유유연제에서 향을 내는 캡슐이 대표적이다. 이런 알갱이는 합성섬유의 세탁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과 섞여 하수로 배출된다. 인천시가 2019년 세어도·영종대교·인천신항·덕적도·자월도 등 5개 해역에서 미세플라스틱 실태를 조사한 결과, 한강과 수도권매립지에서 가까운 세어도가 연평균 1㎥당 8.19개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덕적도는 4.75개로, 한강에서 멀어질수록 미세플라스틱 수치가 떨어졌다.

국내 플라스틱 1인당 연간 사용량은 132.7㎏(2015년 기준)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65.8㎏)·프랑스(65.0㎏)의 두 배가 넘는다. 미세플라스틱은 먹이사슬을 거쳐 수산물로, 바다에서 생산된 소금으로 밥상에 올라온다. 미세플라스틱의 역습은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