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72.9% 차별금지법 제정 찬성 … 정치가 응답할 때

 

▲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원 등이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열린 '이주여성의 권리 보장과 인종차별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인천일보DB

 

#지난해 12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시민사회와 국회의원들은 헌법 11조 1항인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를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를 이뤘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들은 제정 필요성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하는지 구체적 방안도 마련했다. 보수기독교 교단 등을 중심으로 한 반대에 밀린 정치권 셈법을 해결하고, 나아가 굳어진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의 세부내용을 정하기 위한 법률이다. 헌법이 큰 틀에서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이라 적어둔 차별금지 사례를 구체화하기 위함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무총리에게 제정을 권고한 차별금지법안을 보면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장애·병력·나이·출신국가·출신민족·인종·피부색·출신지역·용모 등 신체조건·혼인여부·임신 또는 출산·가족형태 및 상황·종교·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전과·성적지향·학력·고용형태·사회적신분 등 20가지 이유로 차별금지 유형을 담았다.

#높은 기대감 … 혐오차별 규제하라

72.9%. 국가인권위원회 '2019년 혐오차별 국민인식 조사'<그래픽 참조>에서 나온 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하는 국민 비율이다. 찬성의견은 성별·연령·출신지·학력 등 모든 층에서 모두 60% 이상이 나왔다. 특히 여성 74.5%, 50대 75.1%, 농림축어업 종사자 81.8%, 중졸 이하 83.3%, 소득 하위층 74.0%가 높은 찬성을 보였다.

80.9%. 온라인 사업자가 혐오차별 규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질문에 동의한 비율이다. 이외에도 87.2%가 언론이 혐오 조장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고 찬성했고, 74.4%가 혐오차별에 대해 벌금·징역형을 해야 한다고 동의했다.

#법안 발의조차 못하는 현실

18년.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시작된 후 현재까지의 시간이다. 18년의 기간 동안 차별금지법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제17대 국회인 2008년 1월 노회찬(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등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제18대 국회인 2011년 박은수(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 19대 국회인 2012년 김재연(통합진보당)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 2013년 김한길(민주통합당) 등과 최원식(민주통합당) 등이 발의한 두 건의 법안 등 5개 법안은 임기 만료로 폐기되거나 철회됐다.

10명. 차별금지법 발의를 위해 필요한 국회의원의 수다. 20대 국회는 전체 국회의원 300명 중 3.3%인 10명도 모으지 못해 차별금지법을 발의조차 못 했다.
44명. '성적 지향'을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도 제외하자고 동의한 국회의원 수다. 지난해 11월 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 등 44인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해서는 안 되는 사례 중 하나로 정한 '성적 지향'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성적 지향'이 나와 다르면 마음껏 혐오·차별을 내뱉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21대 국회에선 가능할까

4·15총선에서 구성될 제21대 국회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 전망은 밝지 않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우리공화당, 민중당, 정의당 등 8개 정당에 '혐오와 차별 해소를 위한 각 정당의 입장에 대한 질의서'를 보낸 결과 민중당과 정의당 2개 정당만이 응답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정의당 제21대 국회 제1호 법안으로 차별금지법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규 민중당 대표는 "멈추어 있고 진전하지 않는 평등은 혐오에 대한 용인"이라며 "정부와 여당이 하루빨리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민주당을 비롯 거대 양당을 포함한 6개 정당은 4·15총선이 10일 앞으로 다가온 현재까지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참여가 세상을 바꾼다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멈춰 섰지만,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는 순간이 10여일 앞으로 찾아왔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72.9%의 국민이 4·15총선 투표장에 나서 표를 보여준다면 제21대 국회에서는 제정도 희망 사항만이 아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지금 시대에 사는 우리는 차별에 대한 높은 민감성을 가지고 있다. 누구든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시대적 주류"라며 "정치가 국민의 요구를 읽지 못하고, 집권 여당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일부 보수교단의 눈치만 보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는 상황은 그야말로 시대를 못 읽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4·15총선에서 유권자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하는 후보를 21대 국회로 보내면, 국회에서는 마땅히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정치권이 눈치만 본다면 평생 못 만든다. 국민의 요구에 응답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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