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4·15총선을 앞두고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민주당과 대척점에 있는 미래통합당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다. 황교안 대표가 직접 김종인의 자택을 찾아 통합당 합류를 설득했다고 한다. 삼고초려라는 말이 또 다시 나왔다.

김종필 전 국회의원 못지않은 풍운아다. 김종필이 정치흐름에 비교적 순응하면서도 풍파를 겪었다면 김종인은 반대다. 영입은 마다하지 않지만 '차르' 기질을 발휘하다 회군하는 일이 반복됐다.

김종인의 이력을 소개하는 데는 책 한 권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1980년 전두환이 대통령 되기 전에 만든 국보위 자문위원으로 정치무대에 등장한 이래 정권마다 일정한 역할을 했다. 최근 10년간의 행적만 간추려보면 '박근혜 핵심측근 → 민주당 구원투수 → 안철수 멘토'라는 도표가 그려진다. 2012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 승리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특히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만들어 박근혜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탄생 이후 경제민주화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별다른 역할도 주어지지 않자 박 전 대통령과 결별 수순을 밟는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민주당 구원투수로 등판한다. 민주당은 당시 호남민심 이반 움직임으로 뒤숭숭한 가운데 총선을 4달 앞두고 김종인을 전격 영입했고, 그는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해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2017년 3월 19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과 불화로 탈당한 김종인은 안철수 전 의원의 정치적 '멘토' 역할을 했으나 대선 이후 거리가 멀어졌다. 안철수 정치 입문 직후 자문을 하다가 소원해진 것까지 포함하면 두 번째다.

그가 이번 선거에서 또 다시 역량을 발휘할 것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만만찮다. 문재인정부 탄생에 일정부분 기여했음에도 비난의 최전선에 선 점, 지난 10년간 보수와 진보, 중도를 오가며 훼손된 이미지 등이 부정적 평가의 근저를 이룬다. 그러나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그가 인연을 맺은 사람마다 결국은 좋지 않은 모습으로 결별했다는 점이다.

아직까지는 능력이나 이념보다 인간관계를 더 중시하는 것이 우리네 정서다. 작은 인덕이 큰 재주보다 낫다는 말도 있다. 김종인은 최근 펴낸 저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나는 국민 앞에 두 번 사과해야 한다"면서 "하나는 박근혜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문재인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라고 밝혔다. 세 번째 사과는 없기를 바란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