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절반 이상 분포…고조선은 고인돌 왕국
▲ 탁자식고인돌

 

▲ 개석식고인돌

 

▲ 위석식고인돌

"희귀하게 잘 보존" 세계 석학 찬사
세계 20개국 6만~8만기 분포 추정
우리나라 4만기 강화·서해 집중
고조선 연결된 중국·일 큐슈서 발견
강화 등 3곳 세계문화유산 등재
강화 부근리지석묘…탁자식 대표
모계전통 '마고문화' 엿 볼수 있어

"세계적으로 희귀하게 잘 남아 있는 선사시대의 기념물입니다.", "수백 개의 고인돌이 한 마을에 남아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 밖에 없을 것입니다. 잘 보존하시기 바랍니다."

한국 '고인돌'을 향해 세계 석학들이 찬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정작 우리 곁에 수 천년 잠들어 있는 고인돌 성찰은 미진하다. 강화 고인돌을 중심으로 한반도 서해 지역, 중국의 동해를 둘러싼 '황해(黃海)'에 집중 분포된 고인돌에 살포시 귀를 댄다. 그리고 선사시대의 '타임머신'인 고인돌 속으로 빠져본다.

2008년 고인돌사랑회가 펴낸 <세계유산 강화 고인돌>은 '말하는 돌 고인돌'로 첫 장을 연다.

고인돌 사랑회는 "3000년 동안 이 땅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고인돌은 일찍부터 빛나는 문화를 창조한 우리 조상들의 재능과 건축술,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고 고인돌을 일컬었다.

# 고인돌, 어디서 왔니.

고인돌은 거석문화(巨石文化, Megalithic Culture)로 여긴다.
선돌(입석), 열석, 환상열석, 석상, 돌널무덤과 함께 거대한 돌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프랑스 카르냑(열석), 영국 스톤헨지(환상열석), 칠레 모아이(석상)와 사촌쯤 된다.

'큰 돌이 고이고 있다'는 뜻을 가진 고인돌, 누가 왜 어떻게 불렀는지는 확실치 않다.

고인돌의 기원과 유래는 명확치 않다. ▲한반도 자생설 ▲남방기원설 ▲북방기원설 등 3개 학설이 공존한다.

한반도 자생설은 한반도에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가장 밀집해 있다는 데서 나왔고, 남방기원설은 동남아시아로부터 바다를 통해 벼농사 문화와 함께 전파됐다는 것이다.

특히 주로 서해안과 중국 동북해안 지역에 고인돌이 집중되고, 남방문화의 하나인 난생설화 분포지역과 고인돌 분포지역이 많이 일치한다는 것 때문에 남방기원설이 힘을 받고 있다. 북방기원설은 북방 청동기문화의 유래를 바탕으로 중국 랴오닝(遼寧) 지역 돌널무덤에서 기원했다고 설명한다.

세계 20개국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은 약 6만~8만기 정도로 추정되고, 이중 우리나라에 4만기(남한 3만 여기, 북한 1만 여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한반도와 연결되는 랴오닝성과 지란성, 산둥성, 자정성 지역에 분포돼 있고 일본은 한반도와 마주보는 큐슈 지방에서 발견된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고인돌 왕국이라 부른다.

주된 우리나라 고인돌 분포지는 서해지역 중 강줄기 근처이다.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전북 고창, 전남 화순, 인천 강화가 등재됐다. '독특하고, 지극히 희귀하며, 아주 오래된 것'을 등재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강화도에는 강화군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의 지역에 150여기의 고인돌이 있다. 강화 고인돌이 공식적으로 조사돼 발표된 것은 1916년 조선총독부에서 실시한 송해면 하도리 고인돌군 5기를 조사하면서부터다.
이 조사 내용은 1917년 발간한 <대정오년도고적조사보고>에 기록됐다.

그 후 1961년이 되서야 <경기도선사시대유적지명포>에 하점면 부근리, 송해명 상도리 황촌부락고인돌이 조사되면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고, 강화 고인돌에 대한 전반적이고 체계적인 현장조사를 한 것은 1992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사실상 처음이라 하겠다.

사적 137호인 '강화 부근리 지석묘'는 탁자식 고인돌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다. 덮개돌의 길이 6.5m, 너비 5.2m, 두께 1.2m, 고인돌 높이 2.4m로 우리나라 최대 탁자식 고인돌이다. 삼거리 고인돌의 경우 간돌검(마제석기), 무늬가 없는 무문토기 조각, 돌가락바퀴(방취차) 등 석재 유물들이 많이 나왔다.

#고인돌 미스테리.

우리나라 고인돌에서 '마고문화'를 엿볼 수 있다. 마고문화는 한반도를 넘어 중국대륙과 일본열도 등에 살았던 고대 동아시아인들이 가부장제가 형성되기 전부터 숭상했던 모계전통이다. 우리나라는 가부장제가 확고해지며 마고문화가 민간에만 남아 있다.

전남 화순 운주사 마고할미 신화에 따르면 국내 최대 고인돌인 핑메바위를 마고할미가 쌓았고, 팽메바위 위 파인 구멍은 마고할미가 오줌을 누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북한의 평안도와 황해도에서도 각각 마고할미가 고인돌 하나는 머리에 이고, 둘은 양팔에 끼워 와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현대 고고학에서 아직 정식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고사에 초점을 두고 고인돌 미스테리를 풀어보려는
시도 또한 여럿 있다. 이중 하나가 마고문화인 셈이다.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위치한 동아시아는 지리적으로 육지에 둘러싸인 다국간지중해 성격을 띠고 있다"며 "동아시아의 해양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집단왕래가 활발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지난 2013년 사단법인 국학원이 개최한 '고인돌왕국 고조선' 국민강좌에서 하문식 세종대 교수는 황해를 중심으로 한반도, 중국 랴오닝성과 지리성 등에 고인돌이 집중 분포한다면서 '환황해(環黃海) 고인돌 문화권'의 설정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조선 전문가이기도 한 하 교수는 또 "고조선 지역의 고인돌은 대체로 고조선의 초기 강역으로 인식되는 공간적 범위와 상당히 비슷하게 분포하고 있다"며 "요동 지역의 비파형 동검 문화권과 거의 일치한다"고 언급했다.

이밖에 일부 역사 계에서 논의 중인 '황해문명권'도 눈여겨 볼 수 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때쯤 한반도의 압록강, 한강, 만주의 요하, 난하, 중국대륙의 황하, 양쯔강 등이 모여 만나는 광대한 하구 평야지대가 형성된 만큼 황해에서 가장 먼저 문명이 발생했을 것이란 추론에서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고인돌, 세계문화유산 북한과 연계성 그리고 인천 톺아보기


한반도 중부 내륙에도 존재…북, 서해안 중심 발견

인천 서구 대곡동 고인돌군은 비록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진 않았지만 인하대 박물관을 통해 100여기가 확인됐고, 가현산 주변 낮은 구릉지와 한강하류의 평야지대에 청동기사회가 존재했음을 입증해주는 것이라며 박물관 측은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박물관장인 윤승준 교수는 "그동안 고창, 화순, 강화 등지에서만 확인되던 대규모 고인돌군이 한반도
중부 내륙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인천 미추홀구 문학산 주변에는 고인돌이 모두 12기로 조사됐다. 학익동 8기, 주안동 3기, 문학동 1기로 현재 4기만 보존됐지만 모두 원래 위치를 잃었다.

수봉공원에는 남구 용일사거리 부근 사무마을에 있던 고인돌 2기와, 문학산 서남쪽 도찬마을 남쪽 밭 가운데 있던 1기를 옮겨 놨다.

시가지화와 택지조성으로 고인돌 훼손 상태가 심했기 때문이다. 학익동 고인돌은 1971년 소년형무소 확장공사로 인천시립박물관 야외전시장으로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1929년 당시 조사에서는 학익동 인근 고인돌이 8개로 확인됐다. 2005년 <인천일보> 보도에는 "일제강점기 이후 무분별한 형질변경과 택지개발, 도로건설, 공단 조성 등으로 부지불식간에 학익동 고인돌이 없어졌다"며 "이들 고인돌은 하나같이 문학산을 중심으로 분포했던 것들로 그 옛날 문학산 일대는 평야 대신 넓고 평탄한 간석지가 잘 발달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지역 고인돌 유적은 황해지역부터 청천강 유역, 함북지역 등 전 지역에 분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큰 특징은 평안·황해 지역의 서해안에 집중 분포되는 등 큰 강을 중심으로 발견된다는 점이다.

강화고인돌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황해남도 배천군 용동리(오덕형) 고인돌과 그 형태나 거리로 보아 문화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고인돌 중 관산리고인돌은 국보급(제29호)으로, 석천산·월암리(용동리)·연탄·지하리고인돌군 등은 국가사적으로 지정됐다.

약 1만 여기로 추정되는 북한 고인돌은 지난 2000년 한반도 고인돌에 대한 세계문화유산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년 전부터 인천을 중심으로 북한 고인돌과 강화 고인돌을 엮는 작업, 강화와 북한 개풍지역에 분포된 고려·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 교차 지원 등이 논의 중이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요동반도의 탁자식 고인돌…'고조선'의 흔적

▲ 해성시 고인돌 모습
▲ 해성시 고인돌 모습
▲ 해성시 고인돌 '내부 별자리'
▲ 해성시 고인돌 '내부 별자리'

요동반도에 300여기...고대 천문 관측 유적'별자리' 또렸이


중국의 고인돌은 요동반도에 약 300여 기 정도 분포해 있다. 이 지역은 한반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의 고인돌은 북방을 대표하는 양식인 탁자식이다.
랴오닝성(遼寧省) 하이청(海城)시에 있는 석목성 고인돌도 탁자식인데 석재의 두께를 가공하여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 고인돌에는 별자리 모습을 새겨놓았다. 유럽에 산재한 고인돌의 배치를 연구한 결과, 동지 때의 일출 방향인 것이 밝혀졌다.

이를 토대로 고인돌이 단순한 무덤으로서의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대 천문을 관측한 유적임을 알 수 있다.

천문은 고대로부터 권력자에게 매우 중시되었다. 하늘을 아는 것은 천손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동시에 권력의 장악과 승계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원시시대 뼈나 토기 등에 나타나던 상징들이 청동기시대에 들어서면서 별자리의 체계가 잡히고, 이를 보다 과학적으로 측정하여 권력을 공고히 해주었던 것이다.
고인돌의 별자리 흔적은 이처럼 권력자의 권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그의 무덤인 고인돌에 이를 새겨놓음으로써 죽어서도 권력을 누리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에 새겨진 별자리 표시는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하여 보다 체계화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서 보는 것처럼 독자적인 천문을 기록하는 관원이 생겨나고 이들이 구축한 천문지식을 활용하여 국가와 권력 유지에 필요한 다양한 문화를 발생시켰다.

요동반도의 고인돌 주변에서는 질그릇 조각과 석기 및 비파형동검이 함께 출토되었다. 이러한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서도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도 고조선시대에 해당됨을 알 수 있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