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반, 한 편의 TV드라마 '여로'가 국민들의 가슴에 가족 사랑을 불태우고 교육의 힘을 구가하면서 전국의 민심을 흔들었다. 
정신지체로 언어구사가 불편한 아버지와 한 가정을 굳건하게 지키며 억척같은 살림꾼이자 현모양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부모의 지극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가 20명 안팎을 선발하던 고등고시에 합격하게 되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였다. 


 전국의 모든 가정에게 이 드라마는 진정한 가족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신화적인 힘을 굳건하게 믿게 만든 감동 그 자체였다. 당시 우리는 그렇게 자식교육에 헌신하며 교육에 대한 희망을 간직했다. 소위 교육은 사회적 계층이동의 사다리였다. 


 옛날부터 우리는 '말은 새끼를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 자식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을 했다. 그만큼 서울에서 교육을 시키고 싶어 가족이 소유한 논과 밭, 가축까지 팔아 자식에게 투자했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은 고등교육기관이 몰려있는 출세와 성공이 보장된다고 믿는 기회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지은 농산물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자식이 공부하는 하숙집이나 자취집으로 우리네 부모님은 들락거렸다. 몸은 힘들더라도 미래에 거는 희망과 기대로 마음은 하늘을 날듯이 수 백리 길을 사뿐사뿐 지르밟고 그렇게 했다. 오직 목적은 하나, 바로 교육사다리를 타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우리는 빈부의 차이 없이 감동의 인간승리 드라마를 쓰면서 계층 상승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이야기 자체가 머나먼 전설로 바뀌어 간다. 


 현실은 빈부격차와 직업에  따라 교육의 공정한 기회조차 누리기 힘들다. 정보화시대를 살면서 정보를 먼저 선점한 자가 남보다 앞서거나 세상을 지배하게 됐다. 가진 자는 더욱 많이 갖고, 없는 자는 갈수록 빈곤에 허덕이는 최악의 분배 속에서 가진 자와 정보를 소유한 자는 합법을 가장한 불공정 속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가고 있다. 


 그들은 보통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기회를 지위나 부를 이용하여 남보다 우위를 선점하는 것이다. 많은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SKY캐슬'이란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는 이미 현실 속의 그런 모습을 들여다봤다. 그 속에서 아무리 정의, 평등, 공정을 언급해야 언어게임에 불과할 뿐이다. 


 세상의 인심을 흔들어 놓은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이야기가 세간에 화제다. 고등학생인 아이를 둔 엄마들을 만나면 온통 후보자 딸 얘기다. "속에서 열불이 난다" "그런 스펙도 못 만들어주고 죽어라 공부만 하라고 한 게 미안하다" "이래도 깜깜이·금수저 전형 학종을 계속할 건가" 등 불공정한 제도에 대한 성토가 쏟아진다. 교육개혁이야말로 기회의 균등, 과정의 공정을 표방한 현 정부가 가장 역점을 뒀어야 할 일이다. 


 현 정부 출범 후 대입 수시에 대한 불만이 증폭됐는데도 공론화 작업이란 어정쩡한 방식을 동원해 정시 비중을 소폭 늘리는 등 땜질 보완을 한 게 전부였다. 결국 후보자 임명을 싸고 그동안 누적된 교육 불공정 문제가 분출되고 수시의 민낯이 드러났다. 이렇게라도 터져나온 건 천만다행이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계층이동 통로였던 교육사다리는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개혁이라는 가면을 쓰고 등장한 입학사정관제, 로스쿨, 의·치학전문대학원 등은 기득권 대물림의 시스템으로 작동하면서 기회·소득의 불평등을 키웠다. '개천의 용'도 멸종 위기에 처했다. 


 아무리 교육적 취지가 좋아도 한국 현실에서는 조금만 틈이 보이면 부패가 싹튼다.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도입됐던 제도들이 결국 학벌과 부의 세습 도구로 사용되며 교육사다리를 걷어찼다. 


 이제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태를 계기로 붕괴된 교육사다리를 서둘러 복원해야 한다. 이는 피할 수 없는 국민의 명령이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