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바이러스 사태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망신을 제대로 당한 사람들이 있다. 정치권에서 잘나가다 급격히 추락하는 예가 부지기수지만, 이들은 가히 역대급이라 불릴 만하다. 우선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에게 1심보다 2년 늘어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원을 선고한 뒤 "대통령은 공무원의 부패를 막을 지위에 있지만, 스스로 뇌물을 받는 부정한 처사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통령의 여러 뇌물 혐의 중에는 사위 이상주 변호사 등을 통해 이팔성으로부터 22억5000만원을 받고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임명되게끔 한 사안도 있다. 한마디로 '매관매직'인데, 이 말은 공소장에 명시돼 있어 조선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국민이 부끄러운 대목이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명백한 증거에도 범행을 모두 부인하면서 함께 일한 공무원, 삼성 직원, 그밖의 여러 사람의 허위진술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밝혔다.

한때의 국가원수가 '잡범만도 못하다'는 뉘앙스의 꾸짖음을 듣는 현실에 자괴감이 느껴진다. 실형 선고로 이 전 대통령은 보석으로 석방된지 11개월만에 다시 구속됐다. 그러나 보석 취소 결정에 대해 재항고함에 따라 구속집행이 정지돼 25일 또 다시 풀려났다. 극히 드문 사례여서 "일반인은 알지도 못하는 법제도의 맹점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는 빈정거림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망신거리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제공했다. 유승민계와 안철수계는 물론 최측근 의원들마저 살 길을 찾아 등을 돌린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사무직마저 그를 직격하고 나섰다. 사무처 노조는 손 대표를 향해 "당에는 무기력과 절망이 신종 바이러스와 같이 빠르게 전염되고 있다"며 "빨리 결단하라. 지금은 1분1초가 골든타임"이라고 압박했다.

바이러스까지 손 대표 공격에 동원됐으며, 사무직원들이 당 대표 흔들기에 나선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한 언론은 '손학규만 남았다. 끝은 뭘까'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다른 매체는 '손 대표의 버티기는 노욕과 몽니'라고 표현했다. 결국 24일 대표직에서 물러났지만, 타이밍이 3박자 이상 늦어 망신만 톡톡히 당한 셈이 됐다.

망신은 스스로 불러들이는 법이다. 거짓말이나 잔꾀를 부리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례가 정치·사회·연예 방면에서 어찌 하나둘이겠는가. 반면교사, 학습효과라는 말이 있어 조금 줄어들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이미 자가 치유력이 강화돼 면역화 단계에 이르렀는지, 인간 두뇌 못지않게 얼굴 두께도 진화된 결과인지 답이 안나온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