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 잊고 어울리는 지역 정체성에도
예속성 얽매여 서울정치 대리전 전락

이념 떠나 양심의 정치 펼 인물 기대





인천의 정체성은 흔히들 '개방성'에 있다고 한다. 개항의 도시 '터진개'의 근대사적 유산이 밑받침하고 있어서일 게다.

출신을 따지지 않고 한바탕 어우러져 새로움을 향한 공동체적 정서의 누적이 인천을 인천이게끔 하는 독특함이라는 것이다.

하나 인천 정치의 정체성은 그 개방성과 간극을 두고 있다. 지역적 냄새와 색깔 없이 무미건조한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비쳐졌던 것이 인천 정치였다.

한데 섞이지 못한 채 같은 인천을 종(縱)으로 갈라놓은 동여서야(東與西野) 분할구도는 영호남으로 찢어놓은 중앙정치와 닮아있다.

여느 때는 없애야할 구악(舊惡)로 손가락질해댔던 학연과 지연을 때만 되면 더 날카롭게 자극하지 못해 안달했던 것도 인천의 정치판이었다.

인천의 정치는 그동안 '마음을 보태는' 것이 아니라 '수(數)를 덜어내는' 모양새였다.

내 편이 아니면 나와는 사귀지 못할 '다른 편'이었다. 관계성이 실종되고 예속성이 군림했다.

화합과 통합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분열과 갈등이 지배했다.

'바로미터'라는 영글지 않은 세속의 언어는 어차피 선거판은 51대 49의 싸움이라는 정치적 요설로 불어나 서로 찧고 까불기에 바빴다.

승자의 기록인 정치가 남긴 것은 격려가 아니라 질시, 치유가 아닌 깊은 상처였다.

인천이 그동안 주목받는 정치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한 데는 이런 척박한 정치적 토양 탓이었다.

사실 인천은 걸출한 근대정치사적 인물을 키웠던 곳이다. ▶관련기사 3면

인천은 제헌국회와 2대국회 의원이자 대통령 후보로 나서 차점으로 낙선한 강화도 출신의 조봉암을 배출한 곳이다.

역시 제헌의원이자 자유당 시절 민주당 출신의 부통령이었던 장면도 박문학교에서 배움의 길을 열었던 인천의 정치인이었다.

이들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정치 선각자로 입신한데는 이념을 떠나 국민들의 마음을 담는 감동의 정치, 시대를 앞서서 행동하는 양심의 정치가 있었다.

북진통일을 말할 때 조봉암은 평화통일을 외쳤다. 일제 식민의식 잔재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 수준의 균등성을 담보한 농지개혁으로 국민의 뜻을 받들었다.

자신의 한 말은 죽음과도 맞바꾸지 않는 결기를 보인 책임 정치인들이었다. 지금 인천은 바로 이런 정치와 정치인은 요구하고 있다.

/총선특별취재팀= 박정환 기자 hi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