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의원이 창당을 주도하는 정당의 명칭이 사실상 '국민의당'으로 정해졌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국민의당에서 '의' 자만 빠진 '국민당'이었으나, 금세 '국민의당'으로 바꿔 안 전 의원이 지난날 만들었던 당과 똑같은 명칭이 됐다. 결과적으로 동일한 이름을 가진 정당이 같은 사람에 의해 두 번 창당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국민의당의 '자산'을 이어받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국민의당은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에서 탈당한 안철수를 중심으로 해 2016년 2월 창당된 뒤, 그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38석을 확보하고 단숨에 원내 3당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했다. 하지만 승리한 지역구는 대부분 호남이었고 정당득표율도 호남에서만 민주당보다 앞서 '호남자민련'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대두됐다. 당시 안철수의 행보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자당 후보에 대한 지원 유세를 호남에 집중했고, 정작 의석수가 가장 많은 수도권은 '처삼촌 묘 벌초 하듯' 대충 했다. '샤이하다(수줍음을 타다)'는 인물평과는 달리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언행에는 과감했다. 자신이 '호남의 사위'라는 말까지 했다. 부인이 전남 여수 출신인 것을 내세운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지역주의다. 21세기 들어 선거판에도 탈이념 기류가 형성되고 있지만 지역주의만은 철옹성이다. 여·야의 지역적 기반을 현명한 시민들의 선택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성'과 '성찰'이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과는 지역주의의 승리였다.

선거 직전 사회를 요동치게 한 이슈가 선거판을 흔들 것이라는 분석도 최소한 영호남에 한정해 볼 때 머쓱한 결과를 초래했다. 하긴 짧은 기간에 생겨난 이슈가 국민의 뇌리와 뼛속까지 박혀 있는 지역주의를 잠재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역주의를 이용하지 않는 정치인이 어디 있는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안철수는 오로지 '새 정치'를 기치로 내걸고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다. 새 정치는 기성정치의 대척점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없는 당위다.

지역주의는 기성정치 중에서도 가장 고약하고 퇴행적인 괴물이다. 때문에 안철수의 새 정치가 지역주의와 연계될 것으로 전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처음에 내건 가치도 공정성장과 격차해소, 지역주의 타파, 실용중도 노선 등이었다.

하지만 안철수의 실제 행보는 지역주의와 맞닿아 있었다. 때문에 이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대권 도전을 위한 교두보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성이 호남을 택한 것 같다는 분석이 있었고, 호남을 자양분으로 해 재미를 톡톡히 본 기존 정치인들에 따른 학습효과가 작용했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하지만 호남인들의 열렬한 지지로 탄생된 국민의당은 창당 2년만인 2018년 2월 바른정당과 통합해 바른미래당으로 탈바꿈됨으로써 용도폐기됐다.

안철수식 새 정치가 망가지는 과정에서 '국민의당'이라는 존재도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국민 상당수가 안철수와 국민의당을 더 이상 미래의 거울로 보지 않게 된 주요 원인이다. 그런 당을 다시 만들겠다고 한다.

안철수가 1년4개월 동안 외국에서 머물다 지난달 귀국해 정치 재개를 선언한 뒤 첫 행선지로 광주를 택한 것도 야릇하다. 거동 하나에 과도한 의미를 둘 수는 없겠지만, 광주는 지난날 '안풍(안철수 바람)'과 '국민의당 녹색 돌풍'의 진원지였던 것이 떠오른다.

때문에 국민들에게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있는 당명을 채택한 것과 연계돼, 또 다시 지역주의로 재미를 보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안철수의 새 정치는 새정치민주연합·국민의당·바른미래당에 이어 이번까지 4번이나 되는 창당으로 '기존 정치와의 차별성'은 바래 버렸다. 그래도 아직 그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안철수가 또 다시 지역주의에 편승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한낱 기우에 그쳤으면 한다. 지역주의의 달콤한 추억에 매료돼 다시 그것에 매달린다면 내년 이후 선거에는 그의 이름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

논설위원 김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