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 뜰 때나 전각 새길 때나 '도구' 잘 다뤄야 작품이 되죠

 

"가게 이름 '미나미'는 일본어로 '남쪽'이란 뜻인데 제가 일본 교토 미나미 지역에서 생활한 인연도 있어서 '미나미'로 지었어요. 그런데 친한 손님들은 '미남이'하는 일식집이라고 하시고 어떤 분은 '쓰나미'로 알고 계세요."

인천 연수구 동춘동에 있는 자연산 활어와 참치 전문점 '미나미'의 김영 조리장은 "요리를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아요. 대표나 사장이라면 요리와 멀어지고 영업에만 신경 쓰게 될 것 같아서 저는 조리장으로 불러 주시는 게 좋아요"라고 말했다.

집안의 장손이라 어릴 때부터 부엌에 들어가 본 적이 없고 중학교 때까지 태권도 선수였던 김씨가 요리를 하게 된 건 1997년에 터진 IMF 외환위기 때문이었다.

"군대 전역후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이 삼천리도시가스 지역관리소였는데 입사 1년 만에 IMF가 터져 윗분들이 퇴직하는 걸 보고 '앞으로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 어머니가 식당을 하고 계셨고 부천에서 대형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매형을 보고 요리를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김씨는 바로 요리학원에 등록한 뒤 낮에는 출근하고 저녁에는 요리 공부와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학원에서 칼질부터 재료 손질과 이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당시 서울 인터콘티네탈 호텔 총괄 주방장인 강사께서 '일식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시험에 합격을 하면 일식집을 소개하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부터 일식 요리와 평생의 인연을 맺게 됐지요."

무사히 자격증 시험을 통과한 김씨는 2000년 서울 강남의 유명 일식집에서 일을 시작한 뒤, 일본생활을 거쳐 인천의 일식집 '삿뽀로'에서 16년 동안 근무한 경험을 살려 지난 2018년 9월 '미나미'를 오픈했다.

"날 것을 먹는 생선회는 신선도와 숙성이 가장 중요해요. 일주일에 3~4번 노량진에서 생선을 구입하는데 싱싱한 자연산이나 양식이라도 육질이 좋은 큰 생선을 고르지요. '생선은 크면 클수록 육질이 좋고 숙성해도 질겨지지 않고 깊은 맛이 난다'는 말을 지금도 재료 구입의 원칙으로 지키고 있어요."

김씨는 평생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다. 회는 숙성단계부터 냄새와 미각이 맛을 좌우하고 손님과 늘 대화를 해야 하기 때문.

"지금도 아침에 출근하면 생선 내장 냄새부터 맡아보고 신선도를 확인해요. 또 손질하기 위해 칼을 대보면 어느 정도 숙성을 해야 할지 금방 느껴져요. 생선은 수돗물이 절대 닿지 않게 하고, 수분은 최대한 빨리 제거해요. 또 어릴 때 어머니가 막걸리 식초를 쓰던 것처럼 얼음물에 막걸리 위의 맑은 부분을 식초처럼 타서 횟감을 재워두죠. 오늘 들여온 생선은 하루 동안 숙성해서 다음날 손님상에 올려요."

'미나미'는 예약손님이 대부분이다. 김씨가 준비해둔 횟감의 양에 따라 부족하거나 떨어졌을 경우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예약을 미루거나 다른 생선을 권하고 있다.

"제가 요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 맘에 들지 않는 음식은 내놓을 수 없다'는 게 신념이에요. 제가 사장이었다면 음식의 질이 조금 부족해도 영업 때문에 팔았을 거예요. 최근에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영향으로 손님들이 일본 술 '사케'는 아예 찾지 않고 한달에 700~800병씩 나가던 아사히맥주는 지난해 7월 이후 한달에 3~4병으로 줄어 국산맥주로 바꿨어요."

6인석 테이블이 있는 룸이 7개 있고 '다찌'라 불리는 주방장 앞 테이블에는 5명까지 앉을 수 있다. 가게 앞에 8대가 주차할 수 있는 전용주차장과 10대까지 가능한 외부주차장이 건물 뒤편에 있다. 032-832-1723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해삼·참치 내장 들어간 특급 양념장 '주도와다'와 함께하는 '그 집'의 추천메뉴]

 

▲ 모둠회
▲ 모둠회

 


●모둠회
'미나미'의 회는 기본적으로 두툼하게 썰어 나오는데 얇은 걸 좋아하는 손님은 주문할 때 얇게 썰어달라고 하면 된다. 계절마다 구성이 달라지는데 이날은 자연산 도미와 광어, 참치가 나왔다. 요즘 한창 제철인 '도미'는 뜨거운 물을 부어주면 껍질에 소나무 껍질처럼 아름다운 무늬가 생기는데 도미 껍질은 불로 살짝 익혀 불맛과 찰진 회맛을 한번에 볼 수 있다. 광어는 쫄깃한 감칠맛에 비린내도 없는 대표적인 횟감이다. 뱃살은 기름기가 적당히 배어있어 고소하고 보들보들하면서 싱싱하게 살아있는 식감을 자랑한다. 참치는 뱃살인 '오도로'와 등살인 '주도로' 등 최고의 부위가 나왔다. 참치는 마블링이 살아있어야 입안에서 살살 녹는 특유의 부드러운 육질을 느낄 수 있다.

 

▲ 해산물모둠
▲ 해산물모둠

 

●해산물모둠
'해산물 모둠'은 랍스터, 단새우, 피조개, 돌멍게, 청어, 학꽁치로 구성됐다. 자연산 뿐인 돌멍게는 보통 멍게보다 바다내음이 덜하고 비릿한 향이 없어 달달한 맛이 난다. 학꽁치는 살 빛깔이 희고 맛이 담백하며 좋은 향기를 지녔다. 겨울철 하늘이 내린 생선이라 불리는 청어는 수온이 낮아지는 겨울에 살집과 지방을 늘려서 맛이 제일 좋다. 살이 붉게 보여 이름 붙여진 피조개는 신선한 바다향을 가득 머금고 있어 보기보다 달큰한 맛이 난다. 몸값 비싸기로 알아주는 단새우회는 이름대로 씹으면 씹을수록 감미로운 단맛이 느껴지는데 먹기 좋게 껍질을 까서 내놓는다. 랍스터 회의 첫 식감은 쫄깃하고, 두번째 식감은 부드럽게 씹히는데 취향에 따라 고추냉이를 풀은 초장이나 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미나미'에서는 랍스터의 횟감을 제외한 앞다리 등으로 지리를 끓이는데 개운하고 시원한 맛이 별미로 다가온다.

 

 

▲ 고등어초밥
▲ 고등어초밥
▲ '미나미'의 별미인 '주도와다'는 해삼 내장인 고노와다와 참치 내장을 한접시에 담은 젓갈이다.
▲ '미나미'의 별미인 '주도와다'는 해삼 내장인 고노와다와 참치 내장을 한접시에 담은 젓갈이다.

 


●고등어초밥
고등어는 날씨가 쌀쌀해져야 겨울을 나려고 살도 오동통해지고 기름기도 흘러 제맛이 오르는 대표적인 등푸른생선이다. 고등어 회는 육질에 탱글탱글 힘이 느껴져 잇새에서 약간의 긴장감까지 감지된다. '미나미'의 고등어 초밥은 일본 교토스타일의 초밥인데 무순과 유자소스에 절인 백다시마를 얹어 먹으면 감칠맛이 그만이다. '미나미'의 회, 해산물, 초밥은 이집에만 있는 '주도와다'에 찍어 먹으면 다른 집에서 만나기 어려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서예·전각 대가 청람 전도진 선생이 찾은 '미나미']
 

 

▲ 서예와 전각의 대가 청람 전도진 선생이 자연산 활어와 참치 전문점 '미나미'를 찾았다.
▲ 서예와 전각의 대가 청람 전도진 선생이 자연산 활어와 참치 전문점 '미나미'를 찾았다.

"서예와 전각은 문자를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고 전각이 서예를 바탕으로 하는 면에서 상호연계성이 있어요. 하지만 서예는 종이 위에 붓으로 글씨를 써서 나타내고 전각은 돌에 글씨를 칼로 새겨서 표현하기 때문에 도구나 방식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서예와 전각(篆刻)의 대가 청람(靑藍) 전도진(田道鎭) 선생이 인천 연수구 동춘동에 있는 자연산 활어와 참치 전문점 '미나미'를 찾아 서각(書刻)과 미각(味覺)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람은 한국 서단의 두 거목인 동정(東庭) 박세림(朴世霖) 선생에게 글씨를 배웠고, 석봉(石峯) 고봉주(高鳳柱) 선생에게 전각을 익혔다.

"혼자 글씨를 쓰던 인천 송도고 2학년 때인 1966년, 친구로부터 당시 서예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던 박세림 선생의 서실 동정서숙(東庭書塾)이 내동에 있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그런데 동정 선생이 서예공부에 정진하던 내 글씨를 보고 맘에 들었는지 '청출어람'의 줄인말 '청람'을 아호로 지어주시며 아들처럼 총애했어요. 한국 전각계의 전설이신 석봉 선생은 1968년부터 인연이 됐어요 당시 충남 예산에 계시던 선생님을 찾아가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정신으로 전각을 익혔어요."

청람 선생의 전각 계보는 중국전각의 거성 오창석(吳昌碩)부터 거슬러 오르는데 오창석에게 배운 카와이센로(河井筌盧)는 일본 전각의 '인성(印聖)'으로 추앙받았고, 석봉은 카와이센로의 수제자다. 석봉은 카와이센로에게 물려받은 오창석의 전각도를 첫 번째 제자인 청람에게 다시 물려줬다.

"까까머리 때부터 50년 넘게 쓰고 새기며 남긴 작품이 수만점이 넘어요. 박정희 대통령과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인장도 새겼고 대한민국 국새자문위원도 했어요. 작품 한점에 집 한채 값을 받은 적도 있어요. 그동안 전통서법에서 벗어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우행(右行)쓰기'와 돌은 물론 흙이나 나무, 심지어 시멘트와 기왓장까지 모든 자연재료를 활용한다든지 부조기법도 차용해서 서예와 전각의 한계를 넓히려는 창의적인 실험을 계속하는가 하면 낙관에 '인(印)'자를 생략하는 파격도 마다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는 신념은 50년 전이나 고희를 넘긴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한국 서예와 전각의 적통을 이어받은 현존하는 마지막 1세대 원로 작가라 불리는 청람은 1969년 국전부터 1981년 마지막 국전까지 특선 3회와 입선 7회라는 대기록을 남기고 35세에 최연소 국전 초대작가에 올랐고 2001년에는 '21세기 대한민국 중진서예가 10인'에도 뽑혔다. 백범 김구 선생 동상비, 인천시민헌장비, 인천상륙작전기념비 등 수많은 비문과 인천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사의 제호도 청람의 작품이다.

"그동안 국내 개인전은 딱 두차례밖에 갖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작품을 정리하려는 취지로 1년 정도 열심히 준비해서 내년에는 서예 작품과 함께 칼과 인주, 돌 등 전각 도구부터 작품까지 모아 전시회를 가지려 해요."

목원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친 뒤 정년퇴임한 청람은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있는 '청람서예전각연구실'에서 작품 구상을 하고 있다.

"이집 상호인 '미나미'는 '남녘 남(南)'자의 일본 발음이지요. 한국·중국·일본에서 남쪽은 따뜻한 지방을 나타내기도 하죠. 회를 뜰 때나 전각 새길 때는 모두 칼을 잘 다뤄야 맛있고 멋있는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글·사진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