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맨, 20여년간 나눔 앞장
'기부 통장' 등 100% 사비로 부담
회사 임직원들도 봉사 단체 활동


"어유, 이게 뭔 대단한 일이라고. 그냥 숨 쉬며 사는 동안 어려운 사람들 돕는 거죠. 함께 살아야 이 세상이 따뜻하니까요."

지난 22일 수원시 화서1동 행정복지센터에 한 손님이 찾아왔다. 흰 머리와 주름진 얼굴, 70을 넘긴 나이. 동네 할아버지와도 같은 푸근한 노신사였다.

센터 안에 들어온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바로 '기부'였다. 그는 "좋은 곳에 써달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 같은 순간을 즐기듯 살아온 지 20년. 기부 횟수로는 세어보기도 어렵다. 수원시에서 '기부 천사'로 불리는 정재덕(사진) ㈜이라이콤 이사의 이야기다.

정 이사는 1999년부터 사회공헌을 이어왔다.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고아, 노인 등 우리 주변에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취지로 기부를 했다.

기부가 워낙 꾸준하다 보니 수원 바닥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지자체 차원의 '이웃돕기 성금', '지역발전 기금'이나 '강원도 산불피해 후원' 등에도 그의 손길이 닿았다.

가장 최근 기부를 지켜본 김은주 화서1동장은 "쉽지 않은 여건에서 끊임없이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대단한 시민"이라고 그를 소개했다.

여유가 많지는 않다. 1984년 수원 매탄동에서부터 '중소기업 맨'으로 살아온 그는 100% 자신의 사비로 기부를 했지만, 경제가 안 풀릴 때면 어려움을 겪곤 했다.

그럴 때는 월급에서 내가 쓸 돈을 더 줄였다. 사야 할 옷이나 먹을 것을 줄여가면서 기부를 끊지 않았다. '기부용 적금통장'을 만들어서 대처하기도 했다.

그동안의 기부금액만 봐도 이 같은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기십만 원부터 1000만원을 훌쩍 넘기기까지 돈을 다 털듯 내는 게 그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정 이사는 인터뷰에서 "작은 손길이라도 필요한 이웃들이 많다. 돈은 살아 숨 쉴 때나 의미 있지, 죽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의 기부 시작은 한 방송에서 시각장애인 아동을 접하면서였다. '나라도 나서지 않으면 저 아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는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보자마자 '내가 보호자가 돼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기부를 시작했다"며 "지금도 수원, 화성 등 지역 시설에서 아이들을 돕는데 너무 기쁘다"고 설명했다.

정 이사의 기부는 살아있을 때까지 이어진다. 정 이사는 "이제 인생의 반이 떠난 상태이지만 기부는 내려놓을 수 없다"며 "기부 천사니 뭐니 그런 거 아니고, 그냥 돕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웃음 지었다.

한편 정 이사뿐 아니라 ㈜이라이콤(매탄동 소재)도 기업 차원에서 사회공헌을 이어오고 있다. 이곳 임직원들은 봉사단체를 따로 구성해 경기도 5개 복지시설을 돕고 있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