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성매매 업소가 밀집됐던 '옐로하우스'는 지난날 서울의 대학가에서 많은 얘깃거리를 제공했다. 아마 인천보다 서울에서 더 유명했을 것이다. 원래 과장이나 낭설은 가까운 데보다 먼 곳에서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마구 풀어대는 옐로하우스 스토리는 어디서 주워들은 게 뻔했지만, 듣는 순간만큼은 다들 솔깃해 했다. 성매매를 그다지 큰 사회악으로 간주하지 않던 시절이었던 데다, 호기심을 자제하고 점잔을 피우기에는 너무 젊었다. 인천 사람들이 들으면 황당해 하겠지만, 옐로하우스는 '짠 당구'와 함께 인천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수년 전 취재차 들른 옐로하우스는 일반 숙박시설처럼 단정했다. 머릿속에 각인된 노란색은 찾기 힘들었고 붉은 벽돌로 된 건물들만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 역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성매매방지법 때문에 비틀거리고 있었다.

상당수 업소가 다른 업종으로 전환했으며, 성매매 여성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실미도에서 훈련받던 특수요원들이 마지막으로 회포를 풀었다는 이곳도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랬던 옐로하우스가 요즘 진짜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재개발로 인해 지난해 1월 철거에 들어가자 업소들은 영업을 중단했고, 성매매 여성 대부분은 이곳을 떠났다. 하지만 16명은 이주·보상대책을 요구하면서 지난해 12월 10일부터 50일째 미추홀구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번 돈으로 호의호식한 업주와 건물주만 보상금을 챙기고, 10여년 간 이곳에 살아온 우리에게는 이주비도 없이 나가라고 한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주택조합은 법적인 근거가 없다며 이들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양측은 구청의 중재로 23일에 이어 29일에도 협상을 벌였지만 간극이 커 서로 얼굴만 붉힌 채 돌아섰다.

성매매 여성들의 요구가 법에 위배될지는 모르지만 사회적 약자 보호 차원에서 사태를 풀어나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들이 성매매에 뛰어들게 된 데는 개인의 일탈이 작용했겠지만, 가정적·사회적 현실이 이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 부자가 됐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실제 이익은 업소 주인이나 관리자가 챙기는 것이 성매매업의 구조라고 여성인권단체들은 설명한다. 성매매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분류하는 것이 요즘 추세다. 이들이 옐로하우스를 떠나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끔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사회장치가 가동되어야 한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