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겨울, 서울청계천광장에서 루미나리에축제(밝은 전구들로 예쁘게 꾸민 구조물을 설치한 야간조명행사)가 진행되었는데 굿네이버스가 현장에서 결식아동들을 돕기 위한 이벤트를 진행했었다. 청계천광장에 커다란 대형트리를 설치해놓고 크리스마스 장식구에 소원을 적으면서 기부하는 이벤트였다. 처음엔 누가 자기소원을 적기 위해 기부금을 내겠냐고 반신반의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기부금을 내면서 소원을 적는 바람에 장식구를 매달 나무가 부족할 정도였다. 매일 오후에 행사를 준비하면서 전날 매달린 신년소원들을 읽어보곤 했는데, 사람들의 소원이 무척 다양하고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염원하는 문구들은 기본이고 축 선거당선, 1년간 20개국 여행, 토익 900점 달성, 누구누구와의 연애·결혼 등 구체적인 소원들도 있었다. UFO에 탑승하고 싶다거나 외국 어느 대통령의 무병장수 기원, 싸이월드 미니홈피 일촌 5명 확보 등 재미났던 소원도 기억난다.

그 중에 하나 아직도 기억에 남는 소원이 '새해에는 맞고 싶지 않다'라는 소원이다. 누가 썼는지, 누구한테 맞고 있는지 그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소원종이를 적은 사람의 절박함과 괴로움이 느껴져서 가슴이 아팠다.
그 추운 날 청계천광장에 나와 좋은 추억을 만들어야할 루미나리에 축제에 참여하면서 오죽했으면 맞는 것을 떠올렸을까. 아이이건 성인이건 누군가에게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견디기 어렵고 두려우며 치가 떨리는 일일 것이다. 특히나 아이들은 폭력에 노출되면 신체적, 정신적인 피해가 더 크며 폭력을 학습하게 되어 다음 세대로 전이되기에 더욱 그렇다. 2020년 새해에는 맞고싶지 않다는 소원을 쓰고 있는 사람이, 아이들이 우리 주위에는 없는가?

연초부터 경기도 여주에서 9세 장애아동이 속옷만 입은채 아파트 발코니에 놓인 찬물 가득한 욕조속에 강제로 앉아 있다가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인천의 어느 병원 응급실에서는 부모와 함께 온 생후 8개월된 남아의 몸에서 머리와 팔 등에 멍을 발견하고 아동학대의심으로 신고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때리고 방치하고 상대방을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것들 모두 폭력이고 학대다. 아이들을 가족의 소유물로 여기고 훈육이라는 이름하에 때리고 비하하는 행위는 처벌받아 마땅한 범죄행위라는 것을 명심하자.

지난 1월13일 여의도 국회에서 굿네이버스 등 아동인권향상을 위해 뛰고 있는 단체들이 친권자가 자녀를 징계할 수 있도록 규정한 '민법 제915조'를 삭제해서 아동학대를 근절시켜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 아동 대표로 나온 어린 학생이 "어른 중에도 잘못을 하고, 노력을 해도 일이 잘 안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어른의 버릇을 고친다고 때리려는 사람은 없다"며 "하지만 우리는 '맞을 만했다'고 한다. 이 세상에 맞아도 되는 나이는 없다. 맞아도 되는 사람은 더욱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훈육을 가장한 체벌, 아동방임, 욕설 등 아동학대가 사라지는 날은 언제일까?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그랬다. 누구를 때려서는 안되고 맞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주변에 없는지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2020년을 시작하면서 올해에는 때리지 않겠다고 결심해보자.

김기영 굿네이버스 서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