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으로 호는 '삼봉(三峰)'이다. 삼봉 하면 떠오르는 게 충북 단양군의 명승지 도담삼봉(嶋潭三峰)이다. 여기에는 정도전의 좌상과 기념비가 있지만, '삼봉'은 도담삼봉의 삼봉이 아니라 삼각산(지금의 북한산)을 의미한다. 하지만 단양군은 야사와 전설을 근거삼아 삼각산 자락이 고향인 정도전을 단양 사람처럼 만들었다. 단양읍을 가로지르는 큰길을 '삼봉로'라 하고 사잇골목은 '도전1~12길'로 이름지었다. 이를 지방자치단체가 역사적 인물을 지역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 사례로 해석해야지 정사(正史) 차원에서 바라보면 논란이 생길 것이다.

사학자 백지원은 저서 '조일전쟁(임진왜란)'에서 이순신의 전적을 '16전 13승 3패'로 규정지었다.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23전 23승'과는 괴리가 상당하다. 백씨는 전장으로 가는 도중 우연히 만난 소규모 일본 함선이나 항구에 정박한 빈 배를 격침시킨 것은 해전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구체적인 사료를 들어 웅포해전과 장문포해전은 사실상 이순신의 패배로 판단했다.

그는 "16전 13승이라 해도 뛰어난 전적임에도 군사정권이 이순신을 신으로 만들기 위해 전공을 부풀렸다"면서도 "이순신은 전공을 떠나 탁월한 지혜와 인품, 애민정신 등으로 볼 때 진정한 영웅"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지난날 국정 교과서에서 임진왜란 당시 임금인 선조는 난을 극복해 묘호에 '조'가 붙은, 제법 괜찮은 왕으로 배웠다. 그러나 '징비록'을 비롯한 역사서에 선조는 '비겁하고 간교한 소인배'로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선조가 의주까지 달아난 뒤 중국에 망명을 요청하자 한 신하가 "필부조차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려 하는데 군주가 자신의 안위만 도모한다"고 질타했다는 기록도 있다.

위의 예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민비(고종의 왕비)를 '제 한 몸 바쳐 나라를 구하려 한 국모'로 묘사한 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각종 역사서에는 민비가 자신의 친족 중심으로 민씨정권을 세워 국정을 농단하고 청나라·러시아 등 외세를 끌어들여 조선의 망국을 부추긴 것으로 기록돼 있다. 역사학자들은 명종의 모친인 문정왕후와 민비를 조선을 망친 왕비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역사의 해석·연구에는 다양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다양성을 엄폐삼아 역사 왜곡이 무분별하게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신빙성 있는 사료 없이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부끄러운 역사를 미화하면서 어떻게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할 수 있을까.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