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꼽는 한국인의 특징 중 하나가 '빨리빨리 문화'라고 한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건물을 허물고 짓는다. 식당에 들어가 앉자마자 밑반찬이 깔리는 것을 좋아한다. 뭔가 시간이 단축되는 것 같고 효율적으로 느껴진다. 빨리빨리 문화의 대표적인 것이 초고속 와이파이와 배달문화다. 와이파이가 어디든 되고 빠르다. 배달도 마찬가지다. 웬만한 지역이라면 다양한 음식부터 각종 물건까지 다 배달이 된다. 외국인들은 처음에 그런 서비스에 놀라워한다. 그 편리함에 익숙해지고 중독된다. 외국인들이 자국에 돌아가 빠른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것에 종종 불만을 터뜨린다. 심지어 그것 때문에 한국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빠르다는 것은 속도의 문제인데 빠를수록 정확도는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빠르면서 동시에 정확한 것은 숙련된 장인들의 영역이다.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종이봉투를 접거나 연필심을 작은 용기에 담거나 도넛을 만드는 달인들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매번 같은 개수와 같은 무게의 물건을 집어든다. 그런 신들린 능력이 오랜 경험으로 가능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달인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다. 마치 전설의 소림사에 들어간다고 해서 다 고수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보통의 사람들은 속도를 올리면 정확도가 떨어지고 정확도를 높이면 속도가 떨어진다. 그 둘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느냐가 문제다.

어떤 사건이나 이슈가 터지면 기자 또는 SNS를 하는 사람들이 재빨리 소식을 올린다. 기자들은 가장 빨리 보고하려다보니 사건을 다 파악하기 전에 단편적인 것을 먼저 인터넷에 올린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을 가진 이 땅에서는 모든 것이 속도전이다. 그러다보니 사건에 대한 기사의 정확성을 제대로 체크하고 기사를 작성할 시간이 없다. 자신이 정확성을 체크하는 사이 누군가가 먼저 기사를 올리게 되고, 수많은 조회 수와 함께 인터넷 상에서 계속 퍼져나가게 된다. 비록 그 내용이 정확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우리 역시 사건들을 빨리빨리 처리한다. 초기 올라온 기사를 보고 분노하거나 흥분하거나 슬퍼하거나 좋아한다. 사건의 사실을 제대로 체크하기보다 빨리 처리하고 빨리 판단하고 빨리 퍼뜨린다. 그 뒤에 오는 후속 기사라든가 정정 기사들을 꼼꼼하게 다 읽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일 하나 하나에 시간을 많이 쓸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시간이 없어서일 뿐일까. 빨리빨리 문화가 놀라운 기적을 만든 것도 사실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우리 안에 그것을 담아두지 못해서 빨리 비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담아둔다는 것은 긴장과 불안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고통을 싫어한다. 고통을 제거하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신체적 고통은 병원으로 달려가고 심리적 고통은 밖으로 투사한다. 우리 안에 담아두기 힘든 감정이나 생각을 외부로 빨리빨리 내쫓아버림으로써 고통을 쉽게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원인은 다른 사람이기에 우리는 더 이상 괴롭지 않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기에 재빨리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공격한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적의 샘물처럼 고통은 늘 차오른다. 우리는 여전히 고통을 가져오는 실제 기원을 모른 채 계속 빨리빨리 비워낸다. 빨리빨리 문화는 우리의 정신이라는 용기에 무언가 충분히 담지 못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우리는 왜 슬펐는지 왜 즐거웠는지 왜 분노했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빠르게 지나간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다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다리를 잡고 아프다고 한다. 아픈 것은 맞다. 그런데 그 다리가 아니다.

양혜영 한국정신분석상담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