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호  

여름을 앓는
푸른 별의 뜨거운 열기가
며칠째 거리에서 미적거리며
편의점도 헤어숍도 작은 빵집도
나무의 그늘까지도 흐늘거리게 하는
길가에 고목처럼 앉아 있는 할머니
좌판을 벌인 채 손놀림도 흐느적인다
상품이라곤 깐 마늘 두어 봉지와
쪽파 한 단이 전부다
팔십은 넘어 보이는 삶의 흔적들이
주절주절 수군거리는 몸으로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마늘 껍질을 벗기는
손은 끊임없이 속사정을 털어놓는다
바람도 비껴가는 폭염의 그늘에서
똬리를 튼 채 굳어가는 오후
시간을 접어둔 주름은
경계석 틈에 엎드린 한 포기의 풀처럼
굳이 남은 해를 가늠하지 않는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시에 살다보니 할머니가 펼쳐놓은 소박한 좌판을 만나게 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나 간혹 지나는 골목 한 켠에 느닷없이 만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예전에 같은 종류의 반찬들이 밥상을 가득 채운 적도 가끔 있었다. 콩나물밥, 콩나물국, 콩나물무침 등등. 불평을 늘어놓은 어린 아이들에게 엄마는 말씀하셨다. 어제 아빠가 늦은 퇴근길에 만난 노인이 팔던 콩나물을 다 사오셨다고. 콩나물을 다 팔아야 귀가하신다는 말에 몽땅 사오셨다는 것. 당분간 반찬은 콩나물뿐이라는 것. 비단 우리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집집마다 한 번씩은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들. 그렇다.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권경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