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죽산 어록을 기리며
[썰물밀물] 죽산 어록을 기리며
  • 이문일
  • 승인 2020.01.13 00:05
  • 수정 2020.01.12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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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록(語錄)-유학자가 설명한 교의나 중이 설명한 교리 따위를 제자들이 기록한 책. 짤막한 말을 모은 기록. 사전적인 풀이다. 어떤 인물이 살아 있을 때, 여러 곳에서 펼친 연설이나 대화 등의 내용을 발췌해 따로 적어놓은 기록을 얘기한다. 대개 후대에 길이 남을 사람이 죽기 전에 한 말을 아로새기고자 묶은 책이다. 어쩌면 예수와 부처가 생활하면서 제자들에게 한 말을 모아 신약성경과 각종 경을 편집한 일도 여기에 해당될 듯싶다.

"태어나서 특권을 보유한 사람도 없어야 되고, 더 많은 국가적 혜택을 입어야 할 사람도 없다. 따라서 더 소홀하게 취급될 사람도 없고, 하물며 주권자인 국민 대중을 업수이 보고 억누를 권리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없다."

권력을 누리고 있거나 지향하는 이들이 특히 되새겨야 할 말이다. 올바르고도 마땅한 일이지만, 정말 이렇게 실천하는 '권력자'가 몇이나 될까. 새삼 이 얘기가 새록새록 떠오르는 요즘이다. 누가 이런 명쾌한 말을 남겼을까.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1899~1959) 선생이다. 그가 1953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한 연설이다. 권력자에겐 호된 질책을, 백성들에겐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준다. 그는 이런 사상을 몸소 행동에 옮기고자 평생을 애쓴 인물로 평가를 받는다.

죽산은 인천이 낳은 위대한 정치 지도자이다. 강화(江華)에서 태어났다. 일제시대 한창 젊어선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살다가 옥고를 치렀고, 해방 후엔 제헌의원·초대 농림부장관·대통령 선거 출마 등의 여정을 거쳤다. 1956년 제3대 대통령에 재출마했다가 낙선한 후 진보당(進步黨)을 창당해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이승만 정권에 눈엣가시처럼 밉보인 죽산은 1958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이듬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결국 2011년 1월20일 대법원에서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 켜켜이 쌓인 그의 '역사적 삶'을 어찌 여기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죽산은 인천의 정신적 지주이자 현대사의 거목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에서 '죽산 조봉암 어록(1948~1954)'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그가 한 말들을 모아 펴낸 이 책은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고 민주주의를 꽃 피우며, 모두 함께 잘 사는 나라를 꿈꾸었던 선생의 정신을 오롯이 담았다. 어록 발간을 계기로 죽산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그가 부르짖었던 '개혁'을 생각한다. 오늘날 사회 각 분야에서 외치는 개혁이 올곧게 이뤄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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