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역대 최악의 식물국회 오명
각종 여론조사서 "잘못했다" 월등
시민사회단체 '총선 이슈화' 고심
사진제공=연합뉴스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4·15 총선이 넉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지난 17일 지역구 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됐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바라본 모습은 총선 이슈가 아니라 정당간, 정파간 싸움이다. 정치 특성상 대결 구도가 필요하지만 이는 이슈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구도일 뿐인데도 현 상황은 앞뒤가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향한 날카로운 민의는 점차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과도기이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의 모든 기득권을 지탱해주는 '기득권 정치구조'가 흔들렸다.


경기지역 시민사회단체는 현재의 과도기적인 개혁 상태에 멈춰 있지 않기 위해 '국회 적폐청산' 기치를 내걸었다. '적폐청산'에 이은 또다른 시민의 열망이다. 20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일 안하는 국회'로 낙인 찍힌 탓이다. 촛불에 담긴 시민의 염원을 통해 이번에는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대 일 안하는 국회
국회의원의 중요한 기본 책무인 법안처리는 역대 최악이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25일 기준)에 따르면 국회에 접수된 법안은 총 2만3579건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집계됐다. 하지만 본회의에 처리된 법안은 7211건으로 법안 처리율이 30%에 그쳤다. 현재 계류된 법안은 1만6368건으로 나타났다.
20대 국회 법안처리 실적은 앞서 19대 국회보다 훨씬 저조했다. 19대 국회에서 법안 처리율을 살펴보면 접수된 법안은 총 1만7822건 중 7443건(41.7%)이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경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허구한 날 국회 문을 닫아놓고 광화문으로, 청와대 앞으로 달려가고, '빠루' 등의 육탄전으로 아이들 보기 부끄러운 장면들만 보여줬다"며 "그러는 사이에 민생법안들은 의원들 책상 서랍 속에서 썩고 있는 등 20대 국회는 민생을 돌보지 않는 국회임을 자인했다. '식물 국회', '동물 국회', '역대 최악' 등 온갖 오명이 뒤범벅된 이번 국회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가 내년 총선에서 표로써 무섭게 심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20대 국회 스스로 '일하는 국회법'(국회법 개정안)을 만들어 지난 7월부터 시행했다. 각 상임위별로 법안소위를 월 2회씩 의무적으로 열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여야 극한 대립이 장기화되면서 월 '2회'는 커녕 예정된 소위조차 파행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각종 여론기관에서 조사한 '20대 국회 의정활동 평가' 조사에서 '잘했다'는 긍정평가보다 '잘못했다'는 부정평가가 월등히 높았다.
정치전문가들은 "국회는 입법기관이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불법이 난무하고 정치의 근본인 소통과 협치의 정치가 실종된지 오래다. 더이상 국회에서 불법이 난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며 "지금이라도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국회의원들에게 위임한 막중한 권한을 충실히 이행해야만 한다. 또한 실종된 소통과 협치의 정치를 되살려 얼마남지 않은 20대 국회에서 민생법안을 처리해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고 피력했다.

▲작은 구멍 뚫린 기득권 정치
지난 27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려진 지 8개월 만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2년이 지난 뒤에야 이뤄진 일이기도 하다.
시민사회는 내용적으로는 매우 불충분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으로 우리 사회의 모든 기득권 구조를 지탱해주는 '기득권 정치구조'가 흔들렸다는데는 공감했다. 한시적이지만 소수정당 진출에 도움이 되는 '준연동형비례제'와 유권자 연령이 만19세에서 만18세로 하향됐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기득권 정치의 장벽에 균열을 내고 작은 구멍 하나를 뚫은 정도라고 표현했다.
기득권 정치가 흔들리면 소모적인 정쟁과 발목잡기로 국민들의 정치불신·정치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정치, 사회·경제적 개혁과제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정치가 유지되기 어렵다고 봤다. 또 여성, 청년, 소수자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외면했던 정치도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시민사회는 "한번 균열이 생기면, 균열이 더 확대되고 마침내 기득권이 쌓아놓은 장벽이 무너지게 될 수 있다"며 "정치의 기득권 구조가 무너지면, 사회·경제·문화적 기득권 구조도 무너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이 중요한 까닭도 이번에 만들어진 균열을 어떻게 더 확대해서 진정한 의미의 정치개혁을 이루느냐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들의 노력도 필요하고, 지속적인 정치제도 개혁운동도 필요하다. 현재의 과도기적인 개혁 상태에 멈춰 있으면, 역사는 다시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시민사회단체의 역할 '가이드라인'
경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13일 간담회를 열고 내년 총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할 지 고민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잡지 않고 새해에 논의키로 했다. 하지만 20대 국회가 민생을 돌보지 않는 국회라고 정하고, '국회 적폐청산' 시점이라는데는 동감했다.
회의에 참석한 민진영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지난 대선이 '적폐청산'이라고 하면 내년 총선은 '국회 적폐청산'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며 "각 단체별로 요구하는 안건들을 정리하고, 우리는 제대로 된 후보를 알리는 방법 등을 통해 정치를 바꿔나갈 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유병욱 수원경실련 사무국장도 "경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내년 총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새해가 되면 바로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논의할 계획"이라며 "유권자에게 20대 국회 평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21대 총선에서도 우선은 정당이나 후보들의 정책을 평가해 공유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시민사회는 시민이 함께 참여해 이슈를 만들고, 그 이슈가 중심이 되는 선거가 되길 희망했다. 계속 선악 대결구도로 가면서 21대 총선에서 정당간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을 우려한 탓이다.
또 과도기인 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당리당략에 따라 다시 후퇴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했다.
민 사무처장은 "선거법 개혁 자체가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 보장인데 일정정도 변화는 있지만 시민의 요구라든지, 요구를 담보하기엔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아쉽다"면서도 "그동안 양당 중심의 정치, 승자독식의 정치로 선거법이 대의민주주의의 근본 취지를 반영하지 못했다. 하루 빨리 연동형으로 바로 가지 못하더라도 준연동형 등을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 형태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남춘 기자 baikal@incheonilbo.com

 




유병욱 수원경실련 사무국장 "시민이 함께 하는 선거 만들고파"

 

유병욱 수원경실련 사무국장

20대 국회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21대 국회를 뽑는데 주력해야 되는데 아직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 후보들이 어떤 역할을 하겠다는 약속이나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없다.


이대로 가면 공약이 사라진 선거가 될 확률이 높다. 특히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이슈가 없는 상황이다. 결국 깊이가 없는 공약이 만들어지고, 시민이 빠진 총선이 될 우려가 있다. 게다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국회가 또다시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소모전만 있는 정당간 싸움이 지속되면 극단적 지지자들은 열광해서 참여하겠지만 대다수 시민의 참여는 줄어드는 악영향이 생길 것이다.


워낙 정치 불신이 큰 탓이다.


현재 경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내년 총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할 지 고민하고 있다. 지난 13일 처음으로 모여 논의했다.


지난 대선 당시의 주제가 '적폐청산'이라면 이번 총선의 주제는 '국회청산'이라는 것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만 지방선거와 달리 지역단체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은 크지 않다. 후보들을 평가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새해가 되면 시민사회단체의 역량을 모아 여러 방안을 논의하고, 행동할 것이다.

/최남춘 기자 baikal@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