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관광'이 아닌 … '마음'이 쉬는 곳으로

▲ 배다리 마을에 새로 생겨난 문화공간 '마, 쉬(마음이 쉬어가는 공간)' 그림책방.

어느덧 2019년 한 해도 다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는 다른 어느 해보다도 배다리마을에 눈에 띄는 변화가 많았다. 10년이 넘게 민·관 갈등을 겪어 왔던 인천 중·동구를 관통하는 '배다리 관통도로'가 우여곡절 끝에 합의에 이르렀다. 민·관 합의가 이뤄졌지만 주민주도의 지상부지 활용 등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배다리 외관 파사드 경관개선사업이 진행되면서 상가건물들의 외관이 하나씩 바뀌어 나갔으며,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 오래된 건물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고, 시대적 가치와 특성을 고려한 개선과 보완이 아닌, 대부분 외관만 감싸는 획일화된 방식으로 진행되어 오히려 문화를 파괴하고 훼손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옛 동인천우체국 건물은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으로 재탄생하였다. 옛 성냥공장이 있었던 인촌주식회사의 터로 성냥을 통한 생활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들어선 것이다. 배다리 헌책방거리 초입에는 붕괴위험에 있던 보은사 건물이 헐리고 '마을책쉼터'가 생겼다. 마을쉼터 및 전시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그동안 마을사랑방을 꾸린 경험을 가지고 있는 배다리주민협의체의 주도로 주민공동시설이 만들어졌으며, 1층에는 '배다리손만두가게'가 운영되고 있고, 2층은 '배다리사랑방'으로 쓰이고 있다. 처음 주민주도로 운영되는 공간이라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하는 숙제들을 안고 있다.

이렇게 1년의 배다리마을의 변화를 열거하여보니 변화무쌍하다. 외적으로 새로운 건물들이 지어지고 낡은 건물에 외벽이 덧대어지며 마을의 경관이 한꺼번에 바뀐 모습이 내겐 버겁기도 하다.

오랜만에 배다리마을을 찾은 손님들은 확연히 변한 마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주고 계신다. '동네가 환해졌다, 깨끗해졌다, 예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낯설다,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러 배다리를 찾아오신 손님은 '내가 알고 있는 배다리가 없어졌다'며 당황스러워하셨다. 배다리마을의 가치와 정체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다시 한 번 되짚어봐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새롭게 번듯한 건물을 세우고, 시대적 가치와 특성은 감추면서, 마을 곳곳에 옛 느낌을 담은 문양과 조형물을 세우는 아이러니한 모습은 정말 당황스럽다.

반면, 외적인 변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내용을 채우는 사람들, 삶을 통해 문화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수십 년을 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마을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바로 세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마을의 자원을 바탕으로 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이뤄진 공동체 안에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살아가는 마을인 것이다. 마을에서 어우러져 노닐다 보니 살고 싶어지고,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공간을 꾸려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최근 그렇게 생겨난 공간이 '마, 쉬(마음이 쉬어가는 공간)' 그림책방이다. 꾸준히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들려주고, 엄마들이 모여 그림책모임을 갖더니 마을을 들여다보고 마을에 어우러지는 특색 있는 그림책방을 직접 열었다. 그림책방 하나가 문을 여니 인천 토박이 그림책출판사 북뱅크 사장님이 반가움에 성큼 다녀가셨다. 곧, 출판기념회도 열린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마을에 맞는 옷을 입히며 채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을을 읽어내고 하나씩 쌓아 올린 수고로움이 마을을 살아있게 하는 힘인 것이다. 새로운 그림책방이 생기고, 카페가 생기고, 문화공간이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관에서는 관광활성화에 불을 붙이고자 새로운 공간 지원을 통해 한꺼번에 사람들을 유입시키려는 우려스러운 모습이 비쳐지고 있다. 지원이 필요하다면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하나하나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을 들여다보고 묻고 살피며 목마른 곳에 적절한 지원을 해주기를 바란다. 스스로 뿌리내린 사람들이 둥지내몰림이 되지 않고 오랫동안 마을에 깃들어 살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일부러 만들어 내는 배다리 역사문화마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기승전 '관광'으로 끝나버리는 배다리 마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개미처럼, 달팽이처럼, 지렁이처럼 느릿느릿 꿈틀거리며 살아가는 배다리 사람들과 맞이하게 될 2020년의 새해, 느려도 좋다. 언제나처럼 더불어 잘 살아보자.

/권은숙 생활문화공간 달이네 대표·요일가게 나비날다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