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정초, 천안에서 한 중학생이 경찰에 붙잡혔다. 시장내 한복집에서 한복 1벌을 훔친 것이다. 그런데 범인을 잡은 파출소 경찰들이 한복집 주인에게 선처를 호소하고 나섰다. 겨울이불과 라면 5박스, 성금 20만원을 마련해 그 학생 집을 찾기도 했다. 그 한복집에서도 겨울이불을 내놨다. 파출소 직원들은 어린 동생들까지 목욕탕으로 데려가 목욕과 이발을 시켜줬다.

사연은 이랬다. 어려서 부모가 이혼해 3형제는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한복집 바느질 일로 생계를 잇는 할머니였다. 눈이 침침해 바느질이 어려워진 할머니가 한복집에서 해고되고 앓아 눕게 됐다. 할머니 앞으로 나오는 읍사무소 보조금 10여만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냉방에서 네가족이 여름이불 2개를 뒤집어 쓰고 버텼다. 먹을 게 떨어지자 소년은 자기가 가장이라는 생각에 잠겼다. 할머니가 일할 때 찾아가곤 했던 그 한복집의 환기통을 뚫고 들어갔다. 한복을 훔쳐 이불과 식량을 마련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에 아직 '장발장'이라는 수식어는 붙지 않았다.

▶빅토르 위고는 일찌기 '파리의 노트르담'으로 유럽문단을 평정했다. 1860년 들어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에 관한 얘기의 집필에 들어간다. 그전에 그는 왜 '레미제라블'을 써야만 하는가를 놓고 40일 밤낮을 두고 숙고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그 어마어마한 책 두께 때문에 '벽돌'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성경 다음으로 쳐 주지만 다 읽은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레미제라블'보다는 주인공 '장발장'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그런데 막상 다 읽은 사람들의 소감이 좀 의외다. 장발장과 팡틴, 자베르 경감 등 등장인물 모두가 불쌍한 인생이더라는 것이다.

▶인천 영종도의 '장발장 부자(父子)' 미담이 오래 이어지고 있다. 배가 고파 마트에서 식료품을 훔친 부자를 체포하는 대신 국밥집에 데려간 경찰관 얘기는 따뜻하다. 들킨 뒤 고개를 떨구고 사죄하는 CCTV 장면에는 가슴이 아프다. 표창장과 감사장, '감동' '희망' 등의 칭송이 잇따른다. 그러나 '미담'으로만 덮고갈 일은 아닌 것 같다. 표창 받은 경찰관이 눈물을 글썽이며 했다는 말이 있다.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옛날 얘기다. '촘촘한 사회 안전망 구축'에만 떠밀 일도 아니다. 인천 장발장이 사는 고장의 슬로건이 '사람사는 복지'였다. 그 동네 기초의원도, 광역의원도, 국회의원도, 지자체장도, 먼저 반성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 아닌가. 일상의 생업에 쫓기는 시민들까지 부끄럽게 해서는 안된다.

/정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