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어릴 때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을 읽고 아린 감흥에 젖었던 기억이 새롭다. 허구이지만 사랑과 용서, 구원과 희망 등을 엮은 내용이다.

빅토르 위고가 1862년 발표한 이 소설은 우리에겐 '장발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던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친 죄를 지은 장발장. 감옥에서 몇차례 탈옥을 시도하다 오랫동안 징역을 살았다. 전과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박해를 당하던 장발장은 우연히 만난 신부의 손길로 구원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이야기다. 사회에서 범죄자로 몰려 인생을 저주하며 불우하게 지내던 주인공의 영혼이 사랑으로 구제되는 과정을 그렸다. 소설이 주는 감동에 힘입어 영화·연극·드라마·뮤지컬 등의 작품을 잇따라 선보이기도 했다.

요즘 인천에서 벌어진 '현대판 장발장 부자(父子)' 사건으로 연일 화제를 낳는다. 지난 10일 오후 아버지(34)와 아들(12)이 배가 고파서 인천 중산동의 한 마트에서 우유 2팩과 사과 6개를 훔치다가 적발된 사연이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자 국민들에게서 이들 부자를 돕겠다는 미담이 줄을 이었다. 현금을 건네는가 하면 후원을 약속하는 문의가 쏟아진다. 점점 인정이 메말라가는 세상에서 훈훈한 이웃 사랑은 여전하다는 걸 보여준다. 영하의 추위를 녹이고도 남는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 양극화가 깊어지는 상황에서 한번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지 않는가.

인천만 해도 최근 1년여간 1000명이 넘는 생계형 범죄자가 경찰의 경미범죄심사 제도로 선처를 받았다고 한다. 아직도 사회안전망이 촘촘하게 마련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사회적 약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강화하는 배려가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인천시는 '장발장 부자' 사건을 계기로 시민들의 복지를 끌어올리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로 했다. 박남춘 시장이 지난 17일 간부 현안회의를 열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라고 지시하면서 구체화했다. '장발장 부자'처럼 쥐꼬리만한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제도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지 못한 취약계층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겠다고 한다. 여기엔 복지국·여성가족국·주택녹지국·인천복지재단 등 관계기관이 모두 함께한다.

크리스마스가 모레 앞으로 다가왔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염원하는 크리스마스는 소외된 이웃과 더불어 지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민중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전파한 예수의 일생을 닮으라는 뜻도 지나칠 수 없겠다. 성탄절을 앞두고 '장발장 부자' 같은 사연을 없애고, 온누리가 사랑과 자비로 충만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