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을 스무날 정도 남긴 날, 오랜만에 친구들과 올 한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화제 삼아 모처럼 회포를 풀었다. 왁자지껄했던 모임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올 최고의 이벤트로 선정된 'DMZ민(民)+평화손잡기'를 다시 생각했다.

4·27판문점선언 1주년을 기념해 인천 강화의 중립수역에서 강원 고성의 비무장지대까지 500㎞를 50만명이 인간띠를 잇는 대형 사업으로 기획된 'DMZ민(民)+평화손잡기'는 6개월 남짓의 짧은 기간에 자발적 시민들의 참여로 실행된 순수 민간사업이었다. 조직적 동원보다는 전국과 지역의 풀뿌리 조직을 네트워크화한 단출한 조직체계로 24만명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나름의 성과를 얻은 사업이다.

4·27선언 1주년을 기념하는 시각인 오후 2시27분에 함께 손을 잡고 평화를 염원하는 묵념과 다짐하는 함성, 그리고 통일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아주 단순한 행사였지만 참여자 모두가 연대를 확인하며 감격과 감동을 공유한 사업이었다.

SNS를 통한 정보공유와 협력으로 모여든 참여자들이 교동과 강화를 잇고 파주, 연천, 철원, 양구, 고성의 접경마을 주민들과 함께 손을 잡았다.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들과도 함께 손을 잡았다. 꽃피는 봄날 DMZ로 소풍 온 사람들은 손잡고 춤추며 노래했다.

지난 연말 2019년을 맞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DMZ민(民)+평화손잡기' 행사를 잘 마칠 수 있기를 소원하며 기도했었다. 이 행사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 지 걱정과 염려 속에 겨울을 나고,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4월27일 행사를 치렀다.

하지만 평화에 대한 시민들의 바람과 통일에 대한 염원이 모였다. 처음 만난 이들이 웃으며 손을 잡고 평화를 잇는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우리의 걱정과 염려는 시민의 열망과 힘을 도외시한 탓에 생긴 괜한 우려였음을 모두가 경험했다.

봄날의 따스한 기억에서 빠져나온 오늘의 현실은 차갑다. 북한은 지난 7일과 13일 동창리 서해발사장에서 엔진 시험을 두 차례 진행했다. 이튿날에는 '중대한 시험을 진행했다'고 각각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작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한 약속에 더이상 구속받지는 않겠다고 행동으로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이로써 2018년 초부터 진행된 대화와 협상으로 형성된 평화 무드는 그들의 표현대로 '중대한' 변곡점을 맞게 됐다. 꽃피는 봄날 DMZ로 소풍갔던 경험도 그저 추억거리 일회성 행사로 소멸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위기엔 더더욱 희망을 이야기하며 그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 새해를 기다리며 다시 'DMZ민(民)+평화손잡기'를 제안한다.

세계 최초의 '인간띠잇기운동'은 1989년 8월23일 발트3국(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시민 200여만명이 50년 전에 나라를 빼앗은 소련에게서 나라를 되찾고자 3국을 가로지는 670여㎞에 인간띠(Baltic Way)를 이어서 세계에 자신들의 독립을 호소했다. 2년 후 마침내 독립을 쟁취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들의 역사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정치와 국제관계에 의해서 결과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추종적인 주장에도 흔들림 없이 그 과정을 이끌어 가는 힘의 원천은 '합쳐진(+) 민(民)'이라는 교훈을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상상력으로 꿈을 꾸자. 남쪽 끝 해남에서 그리고 부산에서 이어온 인간띠가 서울에서 한데 모여 판문점으로 향하고 북녘땅 신의주와 나진에서 남쪽으로 내달린 인간띠는 평양에서 뭉쳐 판문점으로 내려와 두 정상이 손잡고 넘었던 그 시멘트 경계선을 가로질러 두 손을 맞잡는 꿈을 꾸자. 이 꿈을 실현할 새로운 버전의 'DMZ민(民)+평화손잡기'를 제안한다.

정세일 상임대표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코오롱 상무, 코오롱상사㈜ 싱가포르 지사장 등을 역임했다. 인천시 민관동행위원회 공동위원장·일자리 사회적경제분과위원장, 남북평화재단 경인본부 공동대표,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세일 생명평화포럼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