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로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연인.' 가수 송창식이 불렀던 '우리는'이다. 얼마 전 타계한 김우중 회장은 기업 창립 44주년을 기념한 무대에서 합창단이 연주한 이 노래의 가사를 음미하며 눈물을 흘렸다. 지휘는 우리나라 합창계의 거목 윤학원 선생이고, 합창은 1988년 해체된 대우합창단 단원들이다. 동석한 대우그룹 임직원들도 이 합창을 들으며 마음이 뭉클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노래의 가사와 함께 지난 영욕의 시간을 참고 견딘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을 것이다. 김 회장은 왜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을까. 사연은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83년 창단된 대우합창단은 우리나라 민간기업에서 최초로 만든 프로 합창단이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단원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실력도 대단한 단원들이 선발됐다. 윤학원 선생도 당시 우리나라 합창계를 이끌었던 최고의 지휘자였다. 대우합창단은 창단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많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아 연주회마다 표가 매진되는 인기를 누렸다.

창단 4년 만에 여러 세계합창대회에서 큰 상을 받는 등 외국에서도 명성이 대단했다.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합창단이 크게 성장하게 된 이면에는 어려운 연습과정이 숨어 있다. 합창은 단원들 개개인의 소리보다는 단체의 소리가 중요시되는 속성을 갖는다. 합창 연습 시간은 단원들의 소리를 제어하고 전체의 앙상블을 조율하려는 지휘자와 자신의 역량을 보이지 못해 애쓰는 단원들 간의 팽팽한 신경전의 연속이다.

합창단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화음은 갈등 가운데 피어난 한 송이 꽃이라고 할까. 유명세와 외연의 확장 이면에 깔린 갈등은 결국 사건과 또 다른 사건으로 만들어졌다.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졌고, 단원들은 지휘자 지지파와 반대파 둘로 갈라지게 된다. 결국 1988년 여름 윤 지휘자는 사직했다.

그해 12월 대우합창단은 해체된다. 그로부터 10년 후, 대우그룹도 부도를 맞아 재계의 숱한 신화를 가슴 속에 묻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저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 회장의 업적 중에서 제일 큰 일이 대우합창단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세계 제일의 합창단을 만들었던 것이고, 둘째는 예술단체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조건으로 예술의 가치를 드높이는 것 이외에 아무 성과나 조건을 달지 않았다는 것이다. 셋째는 지휘자 윤 선생에 대한 무한한 신뢰다. 지휘자는 임기도 없었고, 자연히 연임에 대한 규정도 없었다.

한 해가 저무는 12월이 되면 많은 예술단체와 문화기관들은 사업을 평가하고 성과에 따라 상벌을 받는다. 그래서 성과를 높이기에 급급한 나머지 설립 목적과 거리가 있는 사업을 무리하게 전개하는 단체도 있다. 지휘자의 선임과 연임을 두고 반목하는 단체도 적지 않다. 어떤 단체는 2, 3년을 주기로 갈등을 반복하기도 하며, 불편한 관계는 고치지 못하는 불치의 만성병과 같아지기도 한다. 타계한 김우중 회장을 추모하며, 예술의 가치를 올바로 만들어가는 '합창'의 부활을 꿈꾸어 본다. 합창은 모두를 아우르는 크나큰 에너지가 있고, 개개인의 가슴으로 퍼져 큰 울림이 되기 때문이다.

김흥수 서울대 예술과학센터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