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을 금대리 쪽에서 오르다 보면 산속에 집 다섯 채가 띄엄띄엄 있다. 집 사이가 꽤 멀어 예전에 화전민들이 살던 곳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원주민은 도시로 떠나고 서울 사람들이 주위 경관이 뛰어난 이 집들을 사들였다. 이들은 집을 대충 고친 뒤 별장 삼으려 했지만 산이 워낙 깊은 탓인지 좀처럼 찾지 않는다. 대신 객들이 주인 허락을 받고 거주한다.

서울의 한 대학원장이 사들인 집에는 머리가 무척 긴 도사풍의 40대가 홀로 산다. 그의 부인은 "남편이 도시에 신물을 내 (남편이) 여기 있는 게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기업인 소유의 집에는 약초를 캐다 파는 30대가 사는데, 제대 후 절 등을 전전하다가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또 다른 집에는 도시에만 나가면 몸이 아프다는 노부부가 닭과 염소를 기르며 지낸다.

이들과 얘기를 나눠 보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순박하다 못해 약간은 모자란 듯해 보이는 심성이다. 각박한 세태에 어울리지 못하는 이들이 이곳에 웅크린 것은 당연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이 이들을 비웃어도, 이들은 마침내 안식처를 찾았다는 행복감에 젖어 있는 것 같다.

요즘 TV에서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원래 MBN에서 제작해 1주일에 한 번 방영하는 것이지만, 여러 케이블TV에서 이 프로그램을 사들여 시도 때도 없이 내보내는데 그 공세가 엄청나다. 이 프로를 다루는 케이블TV는 무려 8개로 대부분 낮 2회, 밤 2회 등 하루에 4회씩 방영해 시청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어느 시간이나 '자연인'을 볼 수 있다. 같은 시간대에 3~4개를 볼 수 있는 경우도 자주 있다.

광고 수익을 우선시하는 케이블TV가 이처럼 집착하는 것은 그만큼 시청률이 나온다는 얘기다. 미국 등 해외 교포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나는 자연인이다'가 재미를 보자 유사한 콘셉트를 지닌 프로들도 생겨나고 있다.

자연을 택한 사람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건강이 나빠졌는데도 병원 치료에 한계를 느낀 사람, 인간에 속고 세상에 속아 더이상 도시에 살 이유를 찾지 못한 사람, 평소 자연 속 삶을 동경해 온 사람 등이다. 이들 대개는 자연에 안긴 뒤 건강을 되찾고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고 한다.

한 자연인은 "한강 이남에서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며 큰소리쳤다. 또 다른 사람은 "마음을 내려 놓으니 다른 것이 보이더라"고 말했다. "마음을 비우면 하늘을 얻는다"는 말도 있었다.
이 프로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것은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도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