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의 '렛 잇 비(Let It Be)'는 1970년 발표됐다. 반세기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팝송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노래다.
'렛 잇 비'는 비틀스의 마지막 정규 음반 제목이기도 하다. 비틀스는 밴드가 결성된 지 10년 만에 해체됐다.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그룹 안팎으로 불화에 시달렸다고 알려진다. 폴 매카트니는 꿈속에서 만난 어머니의 위로에서 영감을 얻어 '렛 잇 비'를 지었다고 한다. '렛 잇 비'는 우리말로 '순리에 맡겨라', '그냥 내버려둬'라는 뜻이다.

인천 부평미군기지(캠프마켓) '즉시 반환' 결정이 지난 11일 발표됐다. 1939년 일제가 군수공장인 조병창을 만들고, 광복 이후 미군이 주둔한 땅이 80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물론 독성물질 오염이 확인된 까닭에 당장 문이 열리진 않는다. 캠프마켓 일부에선 수백억원이 투입돼 토양오염 정화 작업도 벌어지고 있다. 정화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를 놓고 한·미 간 줄다리기도 여전하다. 오염 정화는 숙제로 미뤄놨지만, 캠프마켓 반환은 '어떻게 돌려받느냐'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단계로 넘어갔다. 그동안 이를 둘러싼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캠프마켓 반환이 결정된 건 지난 2002년이다. 인천시가 구성한 캠프마켓 시민참여위원회는 지난해 4기가 출범했다. 2009년에는 여론조사를 거쳐 캠프마켓 부지의 71%를 공원으로 조성하고, 나머지를 공공시설 등으로 채우는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되기도 했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시민 공론화로 캠프마켓 활용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지구단위계획도 2021년까지 수정·보완된다. 그러면서 박 시장은 "안전·환경 위해 요소가 해소되는 즉시 부지를 지금 상태 그대로 우선 개방하겠다"고 말했다. 개발을 서두르지 않는 '슬로우 시티 프로세스'를 채택하겠다고도 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금단의 땅'이었던 캠프마켓에는 근대 유산 상당수가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상태 그대로 우선 개방"한다는 발언은 캠프마켓 건축물의 가치를 천천히 따져보고, 역사성을 살린 활용 방안을 찾자는 의미로도 읽힌다.

그동안 인천은 새 것을 쫓는 개발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역사는 덮였고, 건축물은 헐렸다. 최근에도 동구 만석동의 산업유산 신일철공소가 무너져내렸다. 2017년 중구 송월동에서 100년 넘은 애경사 비누공장도 철거됐다. '렛 잇 비'의 노랫말처럼 때로는 그냥 내버려두는 게 현명한 판단일 수 있다.

이순민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