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흥 논설위원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자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돌을 맞는 뜻 깊은 한해였다. 또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의열단 창단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일제를 향해 분노에 찬 폭탄을 던지고, 친일 앞잡이들을 암살하던 의열단은, 그들에게 악몽의 대상이었다.

지난 5일 오후 인천 부평아트센터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인천생명평화포럼이 제159차 행사로 마련한 '약산 김원봉의 생애와 독립투쟁' 강연회다. 의열단을 조직하고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김원봉의 일대기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한 달 전 '민족 혁명가 김원봉'을 펴낸 인천의 대표 작가 이원규 선생이 강단에 올랐다. 14년 전인 2005년 첫 평전을 낸 이후, 새롭게 정리한 증보판을 선보이는 자리를 겸했다. 이날 강연에서는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인천지역 의열단원들이 소개됐다. 인천 장봉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을규, 이정규 형제 이야기다.

이들은 송현동에서 거주하며 인천고등학교(당시 인천공립상업학교)를 나란히 졸업했다. 이을규 지사는 의친왕 상해 망명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른 뒤, 의열단에 가입해 무기제조와 무장 훈련에 힘을 쏟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고, 함께 항일운동에 투신했던 동생 이정규는 이후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두 형제는 일제의 밀정 김달하를 암살하는데 깊숙이 관여했다. 의열단은 항일운동 정보와 동지들을 팔아넘기던 김달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고, 이을규 지사 형제는 거사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다.

이처럼 인천이 배출한 걸출한 독립 운동가들은 오히려 인천에서 그리 알려지지 못했다. 출신 학교인 인천고등학교에서도 두 독립 운동가를 기리는 전시물을 찾아 볼 수 없다. 2018년 발간된 인천고 인물사 중 4쪽 분량의 기록(이원규 선생 수록)이 전부다. 이런 모습이 3·1운동 100주년과 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보내는 인천의 현실이다.

이원규 선생은 이날 강연 말미에 의열단원 13명의 이름을 함께 불러 보자고 제안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단원들이 기뻐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황상규 지사 이종암 열사, 윤세주 열사, 김익상 열사, 박재혁 열사, 김상옥 열사, 최수봉 열사, 김지섭 열사, 나석주 열사, 김한 지사, 신철휴 지사, 고인덕 열사, 이을규 지사. …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차례로 따라 부르는 참가자들의 목소리에서 잔잔한 떨림과 먹먹함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