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식 H&J산업경제연구소 소장

 


지금은 인공지능(AI) 시대다. 지난 2016년 알파고가 불러일으킨 AI 신드롬은 진행 중이다.
알파고는 구글이 개발한 AI 바둑프로그램이다. 알파고는 세계 바둑랭킹 1, 2위인 이세돌과 커제를 제압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바둑 만큼은 컴퓨터가 이기기 어렵다는 예상을 깼으니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준 것이다.

이제 AI는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무기가 됐다. 구글과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화웨이 등 글로벌 기업들은 AI 분야 스타트업 인수 경쟁이 치열하다. 스타트업을 사들여 인재를 확보해 AI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들이 AI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
국내 4대 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과 현대차, LG, SK는 젊은 총수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 하나같이 AI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청사진을 마련하고 국내외 스타트업 인수에도 팔을 걷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각각 일본 소프트뱅크와 SK텔레콤과 손을 잡았다. 이대로 가다간 구글 등 글로벌 기업 공세에 설 땅을 잃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AI는 데이터가 기반이다. 데이터가 없으면 AI는 껍데기와 다름없다.

기업은 데이터를 분석, 소비자 마음을 읽어 마케팅에 활용한다. 금융기관은 AI로봇으로 투자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제 빅데이터는 경영 전반에 없어서는 안되는 핵심이 됐다. 다시 말해 기업에 데이터 경영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데이터 경영의 근간이 되는 데이터 활용은 각종 규제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 정보 활용에 많은 제약이 있다 보니 새로운 기업이나 서비스가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데이터 기반 산업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마련된 것이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이다. 데이터 3법은 올해를 달궜다. 1년 내내 국회 통과 필요성이 수없이 제기됐다. 산업과 경제 지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그러나 이러한 염원은 공염불이 될 공산이 커졌다. 최소한 연내 국회 통과는 물건너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9일 국회 통과를 예상했던 데이터 3법은 본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데이터 3법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정보기술(IT), 금융, 바이오와 밀접하다. 해당 기업들은 데이터 3법이 패스트 트랙과 상관 없는 민생법안인데도 정쟁에 휘말려 무산될까 걱정이 크다. 규제를 풀어 미래 산업 기반인 데이터 활용 폭을 넓혀주는 것이니 더 늦춰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데이터 3법은 필리버스터 중단에 합의하지 않고는 통과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만일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내년 4월 총선 이후 20대 국회와 함께 자동 폐기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AI 등 데이터 기반 산업은 미래를 주도하는 분야다. 국방력 못지않게 국가 존립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이미 데이터 규제를 풀어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첫발조차 내딛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데이터 3법은 개인정보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다. 문제를 풀어가는 첫걸음에 불과하다. 그러니 자동 폐기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 정쟁에 사로잡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재를 뿌리는 일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데이터 3법 자동 폐기는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를 더 어둡게 하는 일이다. 그동안 여야는 시간 날 때마다 데이터 3법 국회 통과를 약속해 왔다. 이는 국민과의 약속이니 반드시 지켜야 마땅하다.

이완식 소장은 인천 대건고, 인하대를 졸업했다. 전자신문 편집국 부국장·그린데일리 편집국장, 지역총국장, 논설실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광기술원, 한국발명기술진흥원 비상임이사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