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소중한 것 중의 하나가 소금이다. 주변에 지천으로 있고 값도 저렴한데 무에 그리 귀하냐고 하겠지만 간이 되어있지 않은 음식을 한끼라도 먹을 수 있겠는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짐작이 간다. 그래서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이 정착할수 있는 곳은 소금 얻기에 용이한 곳이어야 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역이 황하의 염전 부근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암염이 아닌 바닷물의 천일제염 시작은 천백년전 이탈리아의 시칠리섬에서 였다. 한 수도자가 착안한 것이 시초인데 중국도 청나라 초기 천주교 선교사에 의해 전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일인들에 의해 인천에서였다. 우리 지형과 기후가 적격임을 눈여긴 오오쿠라(奧大藏)로 하여금 인천의 동부 주안에 염전을 개간토록 한것이 효시이다. 1907년 1정보의 염전에서 시험생산 했는데 그해 12만근의 소금을 채취할 수 있었으며 그 품질 또한 양질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서구 가좌동 공업단지가 된 곳이다. 주안에 이어 남동에 염전이 조성된 것은 1921년의 300정보이고 4년후 군자에 575정보가 뒤따랐다. 이렇게 해서 인천 인근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국내수요의 20%이상을 감당했다.

 소금을 석탄 처럼 채굴하는 외국 풍경을 보면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암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옛날부터 바닷물에서 소금을 얻었다. 질그릇에 바닷물을 담아 끓여 소금을 만들던 원시적 방법에서 한단계 발전한 것이 고려때였다. 바닷물을 가둬 1차 증발시키고 짠물을 다시 끓여 소금을 얻었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제방을 쌓고 염전을 조성하는 방식이 나타나는데 이보다 한층 발전한 것이 오늘의 염전이다.

 인천의 염전이 부활되리라는 보도이다. 남동구가 관내의 폐염전을 다시 손질 학생들의 자연학습장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논현 서창동의 서해안고속 연변에는 폐염전이 방치되어 있는데 지금까지는 이곳에 월드컵 구장을 세운다느니 생태공원을 조성한다느니 설만 무성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