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예전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바닷가 마을의 밥상은 온통 바다풀(해조류) 일색이었다.

특히 산과 들에 먹을 것이 사라진 겨울에서 이른 봄까지가 그랬다. 밥도 국도 찌개도 무침도 해조류가 식재료였다. 그러다 날씨가 풀려 미역, 다시마가 나게 되면 갯마을에도 활기가 돈다. 아이들 도시락의 단골 반찬도 미역, 다시마 장아찌 등이었다.

▶해조류 중에서도 우뭇가사리는 돈이 되는 바다풀이었다. 지역마다 우무(남해안)나 까사리(울산), 한천(동해안)으로 불리는 홍조류 해초다. 울릉도 등에서는 '천초(天草)'라고도 했다. 귀한 바다풀이라 해서 일본인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한여름에 더위를 식혀주는 우무 냉채의 식재료로, 가장 친근한 해초이기도 했다.

1960∼70년대 수출입국을 외치던 때, 우뭇가사리와 성게는 큰 수출품이었다. 한국산 우뭇가사리를 일본인들이 최고로 친다는 소문이었다. 바닷가 마을 조무래기들까지 우뭇가사리 채취에 나섰다. 말려만 놓으면 상인들이 거두러 왔다. 천초를 팔아 '돈을 산다'고들 표현했다. 이 돈으로 육성회비를 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동양과 서양은 해조류에 대한 인식에 그 차이가 크다. 해조류를 가장 많이 먹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바다의 채소'다. 그러나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바다의 잡초'로 볼 뿐이다. 일본은 석기시대 때부터 해조류를 먹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서양의학계가 해조류를 '슈퍼 푸드'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그 시작은 장수국가 일본을 주목하면서다. 한국도 못지 않다. 산모가 어김없이 미역국을 먹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새끼를 낳은 고래가 미역을 뜯어먹는 걸 보고 시작된 것이라는 설도 재미있다. 요즘 서울의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미역과 콘부-바다가 잇는 한·일 일상'전이 관람객을 모으고 있다. 양국 민속박물관이 모처럼 공동 기획한 전시다. 한국의 미역과 일본의 다시마(콘부, 昆布)처럼,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한·일의 바다문화 이야기다.

▶그 우뭇가사리가 남북 해양 경협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인천시가 마련한 '서해5도 스마트 해양산업 육성 및 남북협력방안' 토론회에서 우뭇가사리가 지목된 것이다.

마침 우뭇가사리 주생산국인 모로코가 생산량을 감축해 국제시장에서 몸값이 뛰고 있다. 과학논문지 네이처에도 북한 서해안의 마합도가 세계적인 우뭇가사리 군락지라고 발표됐다고 한다. 이 우뭇가사리 군락지는 인근 연평도와 소청도까지 연결돼 있다. 이제 우뭇가사리가 건강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에도 좋은 해조류가 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