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민 작가

 

재미교포 한대수가 한국에 와 '쎄시봉'에서 '물 좀 주소'라고 노래한 것이 1968년이다.

음유시인 김민기의 출현 이전 낭만이 주를 이루던 당시의 포크계에 거부감 나는 쉰 목소리로 '물을 달라'고, 버르장머리 없는 장발의 히피가 이 땅에 나타나 외쳤다. '잘 살아보세!'라는 명제 하나로 국민의 자유를 극도로 통제하며 개발이라는 화두에 목숨을 건 한국은 그런 그가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 윤형주는 카페에 나타난 그에게서 낯선 타향을 발견했고, 송창식은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렸다.

그리 요란하게 데뷔한 이후, 한대수는 '행복의 나라'로 도취된 젊음의 정열을 만끽하며 정점을 찍었다. 행복할 수 없었던 나라와 삶의 어법이 맞지 않자 홀연 자기 마음속 행복 나라인 미국으로 갔다.

당시 미국은 충분히 행복한 나라였겠지만 그가 물을 달라며 숨가빠 하던 시절, 이 나라는 아직 행복한 나라가 아니었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어느 것 하나에도 행복이라는 우주선이 안착할 자리는 없었다.

민주주의가 자유방임과 결합하여 '히피문화'라는 파생 상품을 낳고, 베트남전의 여파로 젊은이들이 보헤미안으로 떠돌며 마약과 자유연애에 탐닉하던 시절, 당시의 한국은 마치 조지오웰의 <1984년> 속 빅브라더였다.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이상한 공화국. 냉전의 기운이 성성할 때였지만 실낱같은 자유가 빗줄기를 만난 강물처럼, 질풍노도와 같이 강둑을 때려대던 그 시절은 불꽃만 붙이면 폭발을 준비할 시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심지의 불은 가장 가까웠던 이가 붙였다.

시간은 흘러 1987년 6·29선언은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었다. 삼성 갤럭시가 세계 1위의 상품이 되었고 LG TV 브라운관은 없어서 못 파는 나라가 됐다. 현대의 신차 제네시스 EQ900을 보고는 자동차 왕국인 독일과 일본도 '서프라이즈'를 외친다. 우리는 분명 무역 선진국이며, OECD 국가이고, 세계 4대 경기대회를 모두 유치한 몇 안 되는 나라이다.

표면적으로 우리는 거의 완벽한 선진국의 대열에 선 나라임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럼 그러한 나라에 사는 우리들은 행복한가. '돈만 있으면 한국은 세계에서 최고로 살기 좋은 나라'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한국의 밤 문화는 최고라며 엄지척 한다. 돈만 있으면 최고인 나라라는 말을 역설적으로 말하면, 이 나라 대부분의 서민들은 세계 최악의 빈곤국 사람들보다 더 불행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은 대부분 선진국이 아니다. 대도시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전원 생활자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중동의 화약고인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배부르면 행복한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생각한 '행복의 나라' 미국으로 갔던 한대수가 한국으로 돌아와 산 지도 꽤 오래됐다. 향수병이든, 무엇이든 이유야 어쨌든 한대수처럼 행복의 나라로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니 한국이 행복의 나라인가. 미국은 이제 행복하지 않은 나라가 됐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며,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 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결국 행복한 나라는 내 마음속에 있다. 마음이 열린 사람에게 행복한 나라는 그리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불가의 화두 마음 같이 그윽할 수는 없지만, 세계 77억 인구가 다 다르듯이 그 다름을 인정하는 마음속에 싹트는 평화, 그것이 곧 행복한 나라일 것이다.

샹그릴라나 유토피아, 율도국만이 이상향인가. 누추하지만 내가 사는 공간, 꿈꾸는 한 칸 방이 바로 행복한 나라다. 그렇다.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