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이민자 후세들이 묻다 "한국인이란 무엇인가"

 

 

 

▲ 영화 헤로니모 포스터. /사진제공=영화공간주안
▲ 영화 헤로니모 포스터. /사진제공=영화공간주안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인 1900년대 초, 멕시코 에네켄(선인장) 농장에는 '철썩 철썩'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에네켄 따는 한국인들을 노예 부리듯 때리는 소리다.

멕시코와 국교도 없던 그 시절, 돈 벌 수 있다는 신문광고를 본 한인 1033명이 멕시코행 배를 탄다. 이 중에 임천택씨가 있었다. 구인광고가 감언이설임을 농장에서 알아차렸지만 계약기간을 어쩔 수 없이 버텨낸 임천택씨 가족은 4년 뒤 귀국하려 하지만 때마침 벌어진 일본과의 합병으로 돌아갈 곳을 잃고 만다.

쿠바로 재이주한 이들 가족은 이렇게 '디아스포라'가 됐다.

26일 영화공간주안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헤로니모'는 임천택의 장남 임은조(쿠바 이름 헤로니모 임)에 대한 이야기다. 쿠바 한인들과 매 끼니 쌀 한 숟가락씩을 덜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낸 아버지를 보고 자란 헤로니모는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쿠바 혁명의 주역이 된다.
사회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쿠바가 조국이라 확신했던 그는 1995년 한인대표로 생애 처음 한국 땅을 밟은 후 가치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90년 전 아버지가 떠나온 땅에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지 않고 소속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여생을 쿠바 한인들의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해 헌신한다. 쿠바에 흩어진 900여명의 한인들을 직접 찾아가 명부를 만들고 한글학교를 세우고 쿠바한인회 조직을 시도한다.

그러나 쿠바한인회 결성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고국의 분단 때문에 남측인지 북측인지를 규정해야 하는 요구를 끊임없이 받는다. 헤로니모는 "여기서는 남북이 없어. 그냥 조국 하나야"라고 말하지만 소용없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치열하고 경건하게 민족의 얼을 지키려 했던 헤로니모의 강인한 의지와 행적은 우연히 쿠바로 여행을 떠났다가 헤로니모의 후손 한인4세 쿠바인을 만난 전후석 재외동포 변호사의 시선으로 그려졌다.

전 감독은 헤로니모로 대변되는 쿠바 이민자 후세들을 쫓던 끝에 궁극적으로 '한국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조국 땅을 밟아 본 적 없는 이들이 100년 넘게 이어 온 꼬레아노 정신이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뜨거운 조국애를 느끼게 한다.

영화 헤로니모는 12월4일까지 영화공간주안에서 볼 수 있다. 관람료 주중 6000원, 주말·공휴일 8000원.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