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아마티앙상블 대표

 

가곡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가을과 가곡의 만남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나뭇잎이 물들어가고, 올해도 어김없이 가곡 애호가들이 그리움과 추억이 깃든 노래들로 가을밤의 정취에 촉촉히 젖어들 것이다. 시가 노래가 되고 우리 민초들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했던 우리 가곡, 비록 해외 뮤지컬이나 대형 공연처럼 외양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슴 깊이 감흥과 서정을 저미게 하는 그 깊은 맛만큼은 어느 음악, 어느 공연 못지않게 깊고 넓다.

그 시대에 유행하는 말을 보면 그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듯이 음악도 그 시대를 반영한다. 주옥같은 가곡들이 많다. 그리운 금강산, 청산에서 살리라, 내 마음의 강물, 향수 등등. 때로는 노도 질풍처럼 강렬하게, 때로는 섬세하고, 따뜻한 음색에, 그 시절을 회상하며 가슴깊이 젖어들게 된다. 그리움이 깊어지는 계절, 우리말과 글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해 보자.

가을 클래식의 진수를 선보이는 노래가 있다. 가을의 정취를 흠뻑 만끽 할 수 있는 가곡 정지용 시인의 '향수'이다.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라 불렸던 시인의 대표적인 서정시로 고향을 떠나 낯선 타국 땅에서 망국의 설움을 간직하고 생활하던 젊은 시인의 꿈에도 잊히지 않는 고향의 따스한 정경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는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고향의 풍경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어 시각적, 청각적 시어들이 고향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한다. 시골에 오래 머물거나 살아보진 않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사진에서 본 따뜻하고 포근한 고향, 그리고 그곳에 대한 향수를 느꼈던 시인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시를 읽으며 내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할머니, 할아버지를 통해 자주 들었던 옛 이야기들이 머리속에 떠오르며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한 느낌을 받는다. 이미지를 중시한 시인답게 이 시는 읽으면 시가 표현하고 있는 이미지가 바로 떠오르며 더 나아가 스스로 자신의 추억을 회상하게 된다.

이 시는 1989년에 통기타 가수인 이동원과 서울대학교 박인수 교수가 듀엣으로 불러서 유명해졌다.
이 노래는 앨범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에 실렸던 노래이다. '향수'는 단순히 만들어진 곡이 아니라 노래와 관련된 분들의 각고의 노력과 단호한 결심이 녹아 들어가 있는 명곡이다.

이 곡이 태어날 수 있었던 까닭은 가수 이동원이 정지용의 '향수'를 읽고 감동을 받아 김희갑 선생님께 작곡을 부탁드렸기 때문이다.

김희갑 선생님은 향수를 작곡하고 노래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방문을 해서 현지 오케스트라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가수 이동원과 함께 노래를 부른 서울대 음대 박인수 교수는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그 시절에 음대 교수로서 가요를 부르는 결단력을 보여주셨다. 멋진 두 분의 노래는 정말 행복한 꿈처럼 달콤하다.
가을밤은 낮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이 가을에 어울리는 가곡으로, 시로도 자주 불려지는 '향수'를 흥얼거리며 구절 하나하나가 그림 같은 고향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아이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잊혀져 가는 세상 모든 이들의 가슴속 따스한 고향을 그리는 '향수'가 몽실몽실 피어나는 오늘이 되시길 기원한다.


김승희 바이올리니스트는 오스트리아 빈 시립음대·린츠 주립음대를 졸업했다. 경기 파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 경원대 음대 관현악과 강사, 서울시교육청 영재교육원·서울 기독교음악대학 교수 등을 역임했다.